▲ 남서쪽에서 본 11건물지

 

   
▲ 동남쪽 체성안 11건물지

 

   
▲ 밖에서 바라본 서문 터

 

   
▲ 북문 터

 

   
▲ 서남쪽에서 바라본 7건물지

 

   
▲ 서문 터 북쪽 성벽과 수구

 

   
▲ 서문 터

 

   
▲ 주건물지 뒤 축대

 

   
▲ 주건물지 왕궁 터 추정

 

   
▲ 중바위에서 바라본 전주시가지

 전북 전주는 통일신라 말 후백제 견훤의 도읍지였다. 견훤은 신라의 변방 서남해안을 지키는 군인이었다. 그는 신라 말 892년 국정이 혼란을 거듭하자 군사를 이끌고 무진주(오늘날 광주)를 점령한다. 그리고 효공왕4년(900년) 완산주(오늘날 전주)를 도읍으로 후백제를 건국한다. 후백제는 궁궐을 짓고 37년 간 영위한다. 그런데 후백제 궁궐터는 언제 어디에 지었는지 명확한 기록이 없다. 지금까지 전주 동고산성과 오목대 토성, 인봉리 일대를 비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중 동고산성이 가장 유력시된다. 산성 안 성황사에 보관된 ‘전주성황사중창기’에서 ‘후백제 견훤왕 궁성 터’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성황사는 조선 숙종 14년(1688년) 다른 곳에서 산성 안으로 옮겨졌다. 중창기에 따른다면 ‘후백제 궁궐터’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전주가 다년간 후백제 도성임을 밝혀주는 사료는 적지 않다.

그러나 동고산성 궁성 확정은 넘어야할 산이 많다. 이곳 산성은 1980년 이후 지금껏 6차례 발굴이 이뤄졌다고 한다. 그리고 11개소 건물 터와 두 기의 우물 터, 4개소 성문 터가 모두 확인됐다. 특히 초기 발굴에서 ‘전주성’ 명문 기와가 출토됐다. 그리고 궁성에서 사용하는 중방(中方), 관(官), 천(天) 등의 명문기와도 함께 나왔다. 장기농성에 산성 안 집수정은 필수적이다. 한 기 우물은 주 건물 터 앞에 있다. 성황사 제사에 사용할 정도로 깨끗한 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로써 동고산성은 후백제 도성 확정에 점점 가까워지고는 있다고 본다.

동고산성은 전주시내 한옥마을 동쪽 해발 703m 승암산 자락에 있다. 체성은 동남쪽 산 정상부 중바위와 북쪽 발계봉, 동쪽 기린봉을 잇는 능선을 따른다. 전체적으로 서쪽 계곡을 감싸 안고 있다. 저지대 계곡방향을 향해 마치 삼태기를 놓아둔듯하다. 계곡을 가운데 둔 포곡식 산성인 것이다. 규모는 둘레 1.7km에 이른다. 그러나 높이 쌓은 성벽은 서문 터 이외 볼 수 없다. 주출입구 저지대에 서문이 있다. 문 터 주위는 짧고 그리 높지 않은 계단식 성벽이다. 좌우로 곧장 가파른 산세가 뻗어나간다. 북쪽은 기암절벽이다.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위산은 그 자체 천혜의 방어망이다. 그 외 북, 남, 동쪽으로는 익성(새 날개처럼 튀어나와 쌓은 성벽)을 두었다. 익성은 주로 자연지형 돌출된 능선을 활용했다. 길이는 북쪽과 남쪽 모두 100m가 넘는다. 동고산성은 사방이 깎아지른 벼랑이다. 계곡입구에 해당하는 저지대 서문 주위에만 성벽을 쌓았다. 나머지 구간은 드러나게 쌓지 않았다. 지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깎아내고 돌로 다지는 편축식 또는 내탁식 축성방식이다. 동고산성 성벽 전 구간 거의 이러한 형태다. 경사 또한 매우 가파르다. 외적이 절벽을 기어올라 공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답사는 서문 터에서 출발한다. 전주전몰군경묘지를 지나면 소나무숲길 끝에 서문 터가 보인다. 서문 터는 폭이 약 6m다. 양쪽에 그리 길지 않은, 사람 키를 조금 넘는 높이의 성벽을 두껍게 쌓았다. 성벽이라기보다는 바위사이 빈 공간을 메운 느낌이다. 특이하게 옹성 흔적과 수구가 있다. 입구에 너른 공터가 보인다.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했거나 백성들의 피난처로 여겨진다. 서문 터 옆 산성 입구를 들어서니 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 숙종 대 옮겨지었다는 성황사로 산성 한가운데 지점이다. 사당 옆문 앞까지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산성 북쪽 산 능선 아래로 나 있다. 성황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오르막 산길이 보인다. 북문 터로 가는 길이다. 체성은 북문 터에서 왼쪽 약수터, 오른쪽 기린봉으로 갈라진다. 기린봉을 향해 약간 가파른 능선을 오른다. 동문 터는 기린봉에서 가깝다. 동문 터에서 다시 하강하면 산성 밖으로 나가는 고갯길이 나온다. 여기서 북쪽에 주 건물 터가 펼쳐진다. 주초석이 줄지어 자리한 것을 보니 건물 터가 분명하다. ‘전주성’이라고 새겨진 명문 기와가 출토된 곳이다. 학계에서는 후백제 궁성 터로 보고 있다. 평탄지는 모두 3단이다. 그중 성황사 바로 뒤 이곳이 가장 넓다. 길이 130m 폭 30m 가량이다. 쌓인 눈 속에 주초석이 드러나 있다. 후백제 왕궁 터라고 한다. 건물 규모는 정면 40칸, 측면 4칸이다. 위쪽 잡목숲속도 건물 터다. 터마다 기와와 토기 조각이 출토됐다고 한다.

다시 서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평탄지가 연이어 나타난다. 주 건물 터보다 규모는 작지만 제법 넓고 장방형이다. 각각 '7건물지', '11건물지' 입간판이 있다. 산성 안 건물 전체가 11개소였던 것이다. 이곳은 고목 소나무 군락이 건물 터 안쪽에 자리해 운치가 있다. 주초석이 줄지어 드러나 있다. 동쪽 건물 터 밖은 산길이다. 두 건물 터 바깥쪽은 급경사 천 길 낭떠러지다. 그리 위험하지 않지만 걸으니 오금이 저린다. 11건물지 끝 지점이 남문 터였다. 문 터 라기보다는 그저 급경사일 뿐이다. 그 뒤로 약 20m 높이 ‘중바위’가 보인다. 오르기 쉽게 나무 계단이 놓여 있다. 바위위에 산불 감시초소가 있다. 15m 더 가면 승암산 전망대다. 여기에 서면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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