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도 안전보건공단 경북동부지사장

▲ 지사장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는 사업주(경영책임자)가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여 실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준까지 포함하면 총 1,210개의 규정이 있다. 이렇게 많은 내용들 중에서 하필이면 체계 구축과 실행을 중대재해처벌법에 넣어 강제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유에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임”라고 되어있다.

그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에 왜 중대산업재해가 기업의 안전문화 및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산업재해는 생산 활동의 부수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조직 활동을 통하지 않는 생산시스템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조직(system)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재해예방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생산시스템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생산 활동은 시스템 속에서 설계된 일과 실제 수행되는 일 사이의 근사 조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변동성인데 변동성은 작업을 잘 못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 보고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해예방 활동에 작업자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재해는 생산시스템의 변동성이 관계되어 나타나기에 역동적이며 발현적이어서 원인이 재해 발생 시점에는 존재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변하여 영구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재해는 변동성을 제거하거나 제한함으로써 예방할 수 없고, 오직 변동성의 관찰과 완화를 통해 조절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운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선을 차로의 중앙과 차량의 가운데에 긋고 이를 맞춰가며 달려가지만 두 개의 선이 주행하는 동안 계속 일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는 동안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모임 제한 등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해 왔다. 이는 바이러스 감염 전파 경로와 위험 요인을 찾아 제거하거나 제한함으로써 확산을 방지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전면적인 방역조치 해제를 앞둔 현시점에서 보면 사회적 거리 두기로서 팬데믹을 종식시킬 수 없고 오로지 집단면역을 통해서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방역’을 선택할 것인가 ‘면역’을 선택할 것인가? 지난 3년간의 팬데믹 경험은 결국‘완전한 방역’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즉 사업장 안전보건관리 측면에서도 위험요인을 찾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기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일이고 체질 강화를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기업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기업의 안전보건관리 체질을 강화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의 구성요소들이 경영책임자 리더십, 자원의 제공이거나 리더십과 관련 있는 것이어서 그 책임 역시 경영책임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지 1년이 되었지만 많은 기업들이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과 실행보다 중대산업재해로 인한 경영 책임자 처벌을 면하기 위한 법적 대응 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

‘방역’도 ‘면역’도 아닌 중대재해처벌법 ‘번역’에 매달리는 격이다. 과연 이런 대응이 중대산업재해 예방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2023년, 기업들이 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하는 재해는 시스템 강화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실행에 매진하는 한 해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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