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산 경영컨설턴트

그 친구의 결혼식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았다. 결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수년째 친구들사이에 드잡이가 있었다. 그 나이에 무슨 결혼식이냐, 환갑도 멀었는데 그 나이가 어때서, 사귀는 사람은 있다더냐, 그야 주변에 널린 게 후보들인데 뭘 걱정이냐 등등. 정작 본인은 결혼할 의사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사단이 났다(사단이 났다기보다는 사단을 일으켰다).

삼십 년 넘게 객지를 떠돌던 친구가 고향에 오면서부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환영회 자리에서 그 친구를 보더니 아직 장가도 안가고 뭘 하고 있느냐로 물꼬를 틀 때 알아봤어야 했다. 만날 때 마다 결혼식 프로젝트 타령이 이어지자 처음에 농담으로 놀리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부터 ‘말이 된다, 한 번 해보자’며 이야기에 생동감을 덧입혀 급기야 ‘집단 무의식’으로 굳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상대방은 누가 되던 간에 결혼식 장면부터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십대부터 전국 단위로 놀던 ‘급’이 다른 친구라 그 동안 뿌린 경조사 비용이 얼추 잡아도 대략 두 자릿수가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최근까지도 수시로 전국권 계보 경조사를 열심히 찾아 다니고 있으니 의리있는 ‘어깨’들이 친구 결혼식을 가벼이 여길 턱이 없다며 ‘하모(그럼)', '글치'가 확산되었다.

때로는 장난으로 받아 넘기고 때로는 정색으로 손사래를 치던 당사자도 워낙 여러 친구, 선후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진지하게 몰아 붙이자 막잔을 비우듯 반항의 여력을 소진해 버렸다. 그냥 식만 올리고 그간 뿌린 경조사비 일부라도 회수하고 정리하자는 ‘위장 웨딩 기획안’을 제시한 자들은 있는 집 자제인 그 친구에게 꿀밤을 얻어 걸렸다.

집요하고 꾀 많은 친구가 그럼 그냥 한 번 상대방을 만나보기만 하고 결정은 나중에 하자며 절충안이 나오고, 마침내 ‘만남에 승용차 한 대’라는 보스의 현상금도 붙었다. 그 친구는 하는 수 없이 그럼 보기만 하겠다, 더 이상 진전은 없다는 반승낙 반엄포를 놓았다. 서울에서 광고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가 강남 일대 네트워크를 풀가동 해서 세 명의 후보 프로필을 들고 왔다.

눈이 게슴츠레 하고 까탈스런 친구들로 위원회가 구성되어 면접을 거쳤다. 예비 신랑이 좋아하는 헤어 스타일과 얼굴 표정, 음식 성향, 말투 등을 세심하게 요구했다. 아나운서 학원과 연기 학원을 다녔고 케이블방송 기상 캐스터 경력이 있는 나이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쭉빵'으로 최종 선발됐다.

첫 만남에서 예비 신랑을 자빠뜨리는 것만으로 샤넬 핸드백이 걸렸다. 어차피 혼수에 포함될 항목이었다. 그 친구가 어떤 표정을 지으면 말을 일단 멈추어라, 숟가락 젓가락은 어떻게 잡고 콩나물과 시금치가 함께 있을 때는 시금치부터 집으라는 디테일까지 주문했다. 물곰탕은 약간 소리를 내면서 콜라겐 부위를 빨아 먹고 과메기와 삼합은 먹을 줄 안다는 정도로 새침을 떼라는 포인트까지 반복 연습을 했다. 만남을 주선한 친구와 강남 네트워크 큰 언니가 첫만남에 배석했다. 어느 제사밥에 정신이 팔렸는지 모를 신부 후보의 영혼이 담긴 연기로 친구는 쉽게 허물어졌다.

마침내 결혼식 날짜를 잡게 되는 ‘불상사’로 이어졌다. 토요일에 시민 운동장을 빌리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전국권 하객을 맞이하는 신랑의 ‘가오’가 있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반대파들의 공격(이 친구의 성품상 그럴 리는 없지만)이나 관련 정보기관 차량들로 교통이 마비될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용이나 호랑이 보디 페인팅, 포니 테일(꽁지머리), 빨간 바지, 백색 구두, 중절모 등 다채로운 하객들에게 어울릴 ‘레드 카펫’도 마련했다.

전국노래자랑을 이끌어 오신 송해 선생님이 당연히 주례 영순위였겠지만 아쉽게도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글로벌 분위기에 걸맞게 중국 흑룡강성 ‘따거’에게 부탁하게 되었다. 신혼 여행은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 한 칸을 통째 예약했다. 운명의 혹은 역사적인 결혼식 날이 도래했다. 삼성과 롯데 야구 경기에 조금 못미치는 인파가 운동장에 몰려 들었다. 축하 공연에 정상급 ‘나는 가수’ 출연자들이 대거 초청된 것도 흥행에 한 몫을 했다.

웨딩 프로젝트를 기획한 범생이 친구가 접수 데스크에 앉았다. 신부측 접수 데스크에 누가 앉느냐 하는 문제로 신경전이 있었고, 신랑 신부측 한 쌍이 앉기로 합의를 본 게 화근이었다. 당초 세 명의 신부 후보로 좁혀진 두 명의 선수(?)들이 레이싱 걸 복장으로 접수 데스크에 앉게 된 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은 없었다.

초대 가수 공연이 무르익을 즈음 접수 데스크에 엎어져 기절해 있는 친구들을 빈 ‘비타 500’ 병으로 두드려 깨웠다. 신부와 두 명의 레이싱 걸, 그리고 축의금 마대자루 행방을 아는 자들은 지금까지 없다. 만남을 주선한 친구는 혼례 비용 정산을 위해 광고회사를 처분하고 ‘웨딩 컨설팅’ 회사를 개업했다. 신랑이 될 뻔한 친구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있다. 후후~

리차드 로티가 말한 ‘최후의 어휘’는 나에게 상상력이다. 인생에서 ‘상상력’을 빼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나이 든 친구 장가 보낼 생각하다 까무룩 졸았다. 따사로운 오후의 ‘봄꿈(春夢)’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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