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이제 3월이면 드디어 봄이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맞는 봄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움추렸던 심신을 활짝 펴면 죽었던 기운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지난 겨울은 예전보다 혹독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지구온난화라고 하는데 오히려 혹한이 몰아쳤다. 겨울이라 당연하겠지만 강추위가 여러 번 왔다. 북극의 찬 기운이 남하했다는 기상청의 설명이 있었지만 그 예전보다 빈도가 높았던 것 같은 느낌이다. 언론의 영향일 수도 있다. 최강한파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왔다.

3월이 다가오면서 봄이 오는지 날씨도 덜 추운 듯하다. 체질과 성격상 옷을 두껍게 입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제 살 것만 같다. 사실 똑같은 온도라도 봄이 다가오니 웬지 여유가 있다. 코로나 이후 약해진 듯하던 미세먼지도 종종 나타난다. 앞으로 올 수도 있는 추위는 꽃샘추위로 겨울철의 엄동설한과는 차원이 다르다.

봄과 아침은 시작이라는 느낌을 준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따른 연속적인흐름이지만 굳이 구분하면 하루와 1년을 시작하는 단어이다. 계절이나 하루 중 시간을 나열하거나 구분할 때 먼저 언급하게 된다.
아침은 매일같이 맞지만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다른 기분일 때가 많다. 맑은날과 흐리거나 비가오는 날의 아침은 느낌이 다르다. 처한 상황에 따라서도 기분좋고 설래거나 날이 밝아오는 것이 두려운 때도 있다
이에 비해 봄은 대부분 새로운 느낌이 든다. 새로운 학년이나 근무상황을 맞으면서 긴장과 함께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올해의 봄은 오랜만에 비로소 봄 같은 봄을 맞는다. 생각해보니 2020년 코로나 이후 계속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같은 봄이었다. 특히 작년 봄에는 2021년 11월 위드코로나를 하려다가 오히려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여 코로나환자가 폭증하면서 생활이 초토화 된 기억이 있다.

코로나를 겪은 후의 봄은 아직 한 번도 겪지 않은 봄이다. 작년 봄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봄기운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큰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큰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직후 전국을 강타한 코로나에 걸렸고 병실에서 한강변을 보면서 답답함을 달래야 했다.
퇴원 후에는 두어 달 동안 회복을 위해 외출을 자제하면서 봄을 느낄 여유가 전혀 없었다. 특히 오미크론 유행으로 더욱 조심스러워했다. 어쩌다 외출을 해도 부자연스런 거동으로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평소 습관대로 어디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도 코로나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지만 불완전했다. 이후에도 소규모 유행이 몇 번 있었고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제한들이 몇 번 더 있었다. 봄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완전한 봄을 맞는다. 다시는 코로나로 인한 제한이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시 새로운 변이가 발생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대규모 유행을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판단이니 믿을만 하다.

어째거나 올해의 봄은 새롭다. 뉴스를 보니 4년 만에 ‘거리두기’ 없는 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기사도 있다.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봄 축제가 정상 개최된다는 것이다.

축제는 지역 기반 문화 산업으로 인식되면서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놀이 문화의 관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에 주로 열린다. 축제는 참가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행사다. 존재감을 나타내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특색에 맞는 축제가 있는데 축제를 위해 1년을 준비한다. 축제가 없으면 전혀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는 단체도 있다. 이런 축제가 코로나 때문에 열지 못하였을 때 관계자들은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이제 축제들이 정상적으로 개최된다면 진정한 봄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별것 아니라고 느꼈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이런 축제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적당한 축제가 연결된다면 한번 가보고 싶다. 작년에 가보고 싶은 곳에 가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기회도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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