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숙 작가

변학도는 뇌물의 힘으로 복직되어 조금씩 알게 모르게 직급이 올라갔어.
거짓 뜬소문이 큰 몫을 했지. 동정심을 얻은 데다 직급이 낮아서 경쟁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던 변학도의 운명을 행운으로 바꾸는 큰일이 생겼어.
이몽룡을 총애하던 임금이 죽고 그 아들이 즉위했으나 병석에 누워 지내는 날이 더 많았어. 임금이 제대로 정사를 펴지 못하자 나라가 어수선해지며 재정은 줄어들고 물가는 벼락같이 올랐어.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당파 싸움이 치열했어.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돈이 필요했어.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야 하는데 씨가 말랐어. 변학도는 이 기회를 천운으로 생각하고 돈의 막강한 힘을 이용하고 싶었어.
“부인, 나라가 어지럽고 정권이 바뀐 이때를 잘 이용하고 싶은데 어찌 생각하오?”
“자고로 돈과 권력은 뗄 수 없는 동반자와 같지요. 그동안 돈을 모은 이유가 바로 권력을 사기 위한 발판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십시오. 돈은 또 모으면 됩니다.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장사치는 이익을 얻고 손해는 보지 않으니까요.”
예상했던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학도에게 기회가 왔어. 변학도는 우의정의 부름을 받자 부인과 의논을 했어.
“부인, 정치물을 먹은 사람은 상대방의 눈빛만 봐도, 상대방의 손짓만 봐도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행동해야 하오. 상대방이 곤란한 말을 선 듯 꺼내지 못하면 먼저 나서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우의정이 왜 나를 부른 것인지 짐작이 가시오?”
“유능한 모사꾼은 눈치로 상황을 판단하고, 처세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화술로 사람들을 모으지요.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임금께서 오래 살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의정 따님과 대군과의 혼담이 오간다고 하는데, 아마도 우리 도움이 필요한듯합니다.”
상인들의 신속한 정보에 부인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어.
“우리에게 이익이 있겠소? 돈만 투자하고 이득이 없으면 손해이지 않겠소? 중립을 지키는 건 어떠하오?”
우의정 딸의 혼담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 걱정이 된 변학도가 머뭇거렸어.
“더 큰 거래를 하시지요. 우의정에게 영특하고 사리 분별이 뛰어난 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군을 사위로 염두에 두고 있고 며느리도 고르는 모양인데 대감께서 우의정과 사돈을 맺는다면 이익이 되겠지요.”
“우의정께서 직급이 낮은 나와 사돈을 맺으려 하겠소?”
변학도는 정치물을 먹어 본 터라 기대하지 않았어.
“중요한 대사를 앞두고 있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겁니다. 상권의 이익을 넘겨주겠다고 제안을 하십시오. 또한 지속적인 자금 지원을 약속하십시오. 그리하면 우의정이 먼저 사돈 얘기를 꺼내실 겁니다.”
상인의 수장답게 배포가 크고 안목이 높은 부인의 말에 변학도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어.

자고로 정치물은 더러운 물이 고여 오염된 곳이나, 들여놓기가 힘들지 한 번 들여놓으면 구정물이면 어떤가. 이 정치물들이 다 출세의 밑거름이라면 해골이 담긴 물이라도 발을 담가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방의 약점을 물어뜯기보다 강점으로 이용해야 하고, 어제의 원수를 내일의 동지로 만들어야 성공하는 법. 변학도의 환경은 정치인이 되기에 딱 맞는 조건이었어.

쉽게 말해서, 정치 밥 오래 먹다 보면 척하면 딱이지. 직위가 높은 사람이 부르면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아랫사람이 먼저 눈치 채고 나서서 일을 수습하는 자가 뛰어난 모사꾼이지. 변학도의 주특기가 바로 그런 맞춤형 모사꾼이란 뜻이지.

“대감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대감께오서 새로운 인물을 찾고자 하신다던데 소인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네를 부른 것은 십 년 동안 나를 도와준 그 의리를 생각해서 일을 맡겨보고 싶어서이네. 사실 이건 극비인데 자네를 믿고 말함세. 지금 임금은 나약하고 병들어서 오래가지 못할 걸세. 우리에게 영원한 권력을 누리게 해 줄 새로운 임금이 될 대군은 힘이 없다네. 어떤가, 자네의 능력이 필요한 이때 자네가 나서주게. 물론 그 대가는 충분히 보상받을 것이네.”
우의정은 평소에 변학도를 신뢰하는지라 속마음을 털어놨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여기 명단이 있네. 직급은 높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자들인데 자네가 도와준다면 그들은 내게 힘을 보태줄 것일세.”
“조건 없이 두 척의 상선에서 나오는 이익금의 반을 대감께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익금을 반씩이나? 대내외적으로 호황을 누린다고 들었는데 역시 자네는 나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체면을 살려주는군. 우리가 같이 손잡고 일을 도모한다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걸세. 듣자하니 자네에게 혼기가 든 여식이 있다고 들었네. 내 며느리로 삼고자 하네. 자연적으로 자네는 나와 사돈이 되고, 새로운 임금은 내 사위가 될 것이네. 내가 정권을 잡으면 자네는 머지않아 이조참판이 될 것이고 정승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세. 자네가 지금까지 내게 보여준 신용이 믿음을 준 것이네. 어떤가? 이런 거래라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나와 손잡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보고 싶지 않은가?”
우의정의 크나큰 은혜에 감동한 변학도는 너무 기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어.

“기회는 어려울 때 보란 듯이 나타나는 거야.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고. 이몽룡, 기다려라. 너는 청렴을 외치면서 돈을 무시하고 다녔지. 내가 돈의 힘이 어떤지 지금부터 하나하나 보여줄 테니 몸으로 잘 느껴보아라. 나를 업신여긴 대가를 크게 치를 것이다.”
변학도는 이몽룡에게 복수할 생각에 한껏 부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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