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숙 작가

 서문

내가 태어난 시골에는 도서관도 없고 서점도 없어서, 옛날이야기는 주로 할머니에게 듣고 자랐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우시장이 있었는데, 빨래를 하러 냇가에 가려면 우시장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입구에는 나무로 만든 화장실이 있었는데, 떠도는 소문은 우리를 늘 긴장시켰습니다.

“우시장 화장실에 달걀귀신이 산대. 눈도 코도 입도 없는데 밤에 나타나서 혼자 지나가는 사람에게 해코지하니까, 혼자 다니지 마.”
“도깨비도 살고 있다던데?
어떤 아저씨가 소를 팔고나서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집에 가다가, 도깨비한테 붙잡혀서 밤새도록 씨름했대. 혼자 지나가면 시비 걸고 같이 놀자고 붙잡으니까 해가지면 다니지 마.”

모두가 아는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본적도 없는 달걀귀신과 도깨비를 만날까봐 혼자서는 다니지를 못했습니다.

정말 귀신이 있을까요?
도깨비가 있다면 왜 우리 동네에 왔는지,
와서는 무엇을 하는지,
지금 만나러 가 볼까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서 가 숙


1. 도깨비 나라 왕의 꿈

어느 날, 도깨비 나라 왕이 무서운 꿈을 꾸고 나서 대신들을 불러 모았어.
“지난 밤 꿈에 우리 도깨비 나라가 불에 타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악몽인 듯하오. 지금까지 태평성대를 누리며 살아왔는데 나쁜 일이 생길까 걱정됩니다. 누가 해석을 해 보시오.”
“대왕께서 꾸신 꿈은 길몽이라 생각됩니다.”
“길몽이라니?”
“폭풍이 불어와서 집이 날아가거나, 나무나 사람이 쓰러지는 꿈은 고통스러운 힘든 일을 겪게 되지만, 불이 나서 탄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일이나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길몽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외부 침입도 없었고, 백성들도 힘든 일이 없었습니다. 나쁜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대들의 의견이 그러하다면 다행이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천리경이 있는 ‘미래방’으로 가 봅시다.”
도깨비 왕과 신하들은 동굴 속에 있는 ‘미래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서 천리경을 본 순간 모두 깜짝 놀랐어.

동, 서, 남, 북 사방에 설치된 천리경 속의 백성들의 모습은 200년 전 보다, 100년 전 보다 더 비참한 모습이었어.
“이럴 수가? 어찌…”
“어찌 된 일이오? 백성들이 사는 모습이 저리 흉하단 말이오?
얼마나 게으르고 씻지 않았으면 쑥대머리에 옷차림이 꾀죄죄하고 집안에 들어가지도 못한단 말이오? 집이 무엇이오? 잠자고 먹고 휴식 생활을 하는 곳인데 모두들 마당에서 생활하지 않소?”
“집이 곧 허물어질까봐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집이 허물어질 것 같으면 다시 짓거나 고치면 되고, 담벼락이 무너질 듯 하면 무너지지 않게 고치면 될 것이 아니요?
자칫 동물이나 벌레에게 물려 병이라도 나게 되면 어찌하오?
오랜 세월 동안 외부 침입이 없어서 잘 살고 있을 것이라 믿었던 내게도 책임이 있소. 이제부터는 백성들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오. 그대들에게 한 달간의 여유를 줄 테니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지 알아오시오.”
도깨비 왕의 엄숙한 명령에 신하 도깨비들은 벌벌 떨었어.
화내는 모습을 처음 보았거든.

신하들은 각자 마을로 돌아가 주민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였어.
“왕께서 100년 만에 ‘미래방’에 들어가 천리경을 보시고는 처음으로 화를 내셨습니다.”
“어디서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했습니까?”
“누가 방망이를 나쁜 곳에 사용 했나요?”“그게 아니라, 우리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보시고 몹시 실망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어떠해서요. 전혀 변한 게 없는데 뭐가 잘못 되었나요?”
“매일 얼굴 보는 우리로서는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천리경을 보고 나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모두 거울을 보시오. 머리를 언제 감았는지, 빗으로 머리를 언제 빗었는지, 또한 옷 세탁을 언제 했는지 기억나시오? 내가 봐도 더러워서 더는 볼 수가 없어서 민망스러웠습니다.”
“그럼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한 달간의 여유를 얻었으니 각자 의견을 생각해 오시오.”
도깨비 나라에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듯, 두 명만 모여도 대책을 세우느라 쑥떡 거렸어.

“자, 오늘은 각자 마을에서 해결책을 마련했을 것이라 믿고 의견을 들어 보도록 하리다. 누가 먼저 말해 보겠소?”
“소신은‘나중에 마을’의 촌장입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각자의 의견을 내 놓았는데, 가장 많은 의견이‘부지런한 마을’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부지런한 마을?”
“우리는 마을 이름처럼 청소도‘나중에’ 집을 고치는 것도 ‘나중에’하면서 오늘 할 일을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무 게으르게 생활해서, 씻고 몸단장하는 일을 하지 않아 몰골이 흉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다가 배탈이 나서 약을 먹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래서 마을 이름을 ‘부지런한 마을’로 바꾸고, 집도 깨끗하게 새로이 짓고, 몸단장도 자주 하게끔 거울을 집집마다 놓아두었습니다. 왕께서 천리경을 보신다면 놀랄 만큼 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원했던 대답이오. 우리 도깨비 나라에 희망이 보이는 듯하여 매우 기쁘오. 다른 마을에서는 누가 말해 보겠소?”
“우리 마을은 전통을 이어 간다는 의미에서 ‘골동품마을’이라고 자부심을 가졌었지요. 물건이 적어도 50년 이하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물건 하나하나에 손때가 묻고 정이 들고 추억이 깃들어 버릴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 녹이 슬고, 집은 허물어지고, 담벼락도 무너져 그 흔적만 남게 되었지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니 멀쩡한 것은 나무와 항아리뿐, 물건은 삭아서 바스라지고 먼지만 가득했습니다.
이번에 동네주민들과 여러 번 의논한 결과, 마을 이름은 그대로 ‘골동품 마을’을 유지하되 녹슬고 삭은 물건은 치우고, 집과 가구는 새것으로 모두 바꾸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는 마당에서 잠자는 일은 없을 것이며, 집안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니 마을이 완전히 딴 세상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을로 바뀌어서 감격스러울 것이요. 좋은 점은 서로 배우고 닮아가도록 노력해 주시오. 마을마다 좋게 변해가니 참으로 기쁘오.”

“우리‘옛 고을’ 마을은 씻지 않고 더럽게 사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왜냐하면 공기 좋고 숲과 들이 많아서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적합했지요. 머리를 감지 않아도 옷 한번 세탁하지 않아도, 개울에서 수영하고 나면 병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상한 물체가 자주 나타나더니, 어디서 날아왔는지 보이지 않는 먼지가 쌓여 갔습니다. 누군가는 작은 먼지를 미세먼지라 부르며 경계해야 된다하고, 어떤 이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커져서 하늘에서 벌을 내려 먼지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우리 마을에서는‘깨끗한 마을’로 이름 짓고 집집마다 청소도 깨끗이 하고 목욕도 매일 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니다가 집에 오면 맨 먼저 손발을 씻고 목욕도 하도록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