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쪽 해안가 체성

   
▲ 서쪽성벽과 매립해안

   
▲ 군선 정박지 추정 해안

   
▲ 동문 터

   
▲ 서문 터

   
▲ 동쪽 성벽

   
▲ 진성안 공덕비군

   
▲ 동쪽 토석혼축성벽

   
▲ 민가 축대로 사용된 성돌

 전남 서남단 해안가 무안은 지형이 반도다. 노령산맥에서 갈라진 한 지맥이 나주평야를 거치며 형성됐다. 무안은 마한의 옛 소국 가운데 하나로 비정된다. 어느 국가 영토인지는 분명치 않다. 근초고왕 24년(369년) 백제에 병합된다. 그러나 완전한 정복이 아니었고 고유문화를 꽃피웠다. 옹관묘, 석실분 등은 백제 계통이 아니다. 무안군 서쪽에는 해제반도와 망운반도가 갈라져 나가 있다. 마치 섬처럼 보이지만 모두 육지와 연결돼 있다. 이 가운데 해제반도에는 백제시대 도제현이 자리했다. 삼국 통일로 신라에 병합된 도제는 신라 경덕왕 16년(757년) ‘해제’로 지명이 바뀌어 무안군 영현이 된다. 고려 현종9년(1018년)영광군으로 이속되고, 조선 태조 원년(1392년) 함평군에 병합된다. 함평군에서 현 무안군 편입은 고종 3년이다. 해제반도 일대는 고대부터 왜구의 약탈이 심했다. 또 중국과 무역 교류가 활발했다. 이에 일찍이 무역선 보호와 해안 방어 성곽과 창고가 생겨났다.

조선시대 해제현 해안가 임수리에는 우도수군첨절제사영이 자리했다. 관할은 검미포, 법성포, 다경포, 목포, 어란포, 군산포, 남도포, 금갑도 등 8개 수군만호진이다. 첨절제사영 해안은 지금도 임치포구로 불린다. 전라우도수군 군선이 머물렀던 포구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두 번이나 다녀간 곳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임자진과 지도진이 생긴 숙종 연간(1682∼1711) 한때 폐성됐다가 조선후기 고종 때 다시 첨사가 배치된다. ‘임치진지’는 삼한 고진(古鎭)으로서 도삼품(徒三品)의 수군첨절제사 밑에 군관 18명, 진사 14명, 지인 5명, 사령16명, 군관 7명 및 2척의 전선(戰船)이 소속돼 있다고 기록했다. 성곽은 초축 시기와 규모를 알 수 없다. 자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 초기 부터 주진이었던 것으로 보아 대략 삼포왜란 직후인 중종 대 수축이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옛 지도‘임치진지도’를 보면, 성문은 동, 서, 남 등 세 곳에 두었다. 그리고 객사를 비롯 동헌, 내아, 사령청, 장교청, 진무청과 화약고, 군기고, 환상고 등이 자리해 있다. 현재 성 안은 잡목이 우거지고 채전이 개발돼 문터나 건물 터는 확인하기 어렵다. 체성 윤곽은 어느 정도 드러난다. 군선은 서문 밖 임치포구에 정박해 있다. 서문 밖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15개 섬이 도열해 있다. 남쪽은 길게 뻗은 반도가 막아준다. 이곳 진성은 옹상 봉수와 해제 봉수를 관할 봉수로 거느리고 있다.
임치진성은 전남 무안군 해제면 임수리에 그 흔적이 있다. 평지 체성은 하단부가 굵은 바위 대신 토석 혼축이다. 체성 상부는 석축이다. 석축은 높이 3m가량으로 추정된다. 형태는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은 타원형이다. 성 안 평탄지를 남쪽과 북쪽 구릉이 내려다본다. 구릉은 과거 봉화산이었다가 지금은 망산이라 불린다. 망은 멀리서 외적을 감제한다는 뜻이다. 평지성과 산성 복합 축성양식을 보인다. 둘레 약 480m로 진성 치고는 규모가 작다. 북쪽 해안은 바다와 접한 10∼20m절벽을 성벽으로 삼았다. 체성은 구릉 바깥을 깎아내고 석축을 쌓았으며 안쪽은 토석을 채웠다. 고대 전형적인 내탁식 축성양식이다. 평지 성벽은 남동쪽 마을 주택가에 옛 모습 그대로 담장과 축대로 이용되고 있다. 동쪽 대나무숲속에 100m가량 무너진 체성이 삼각형으로 이어져 있다. 잘린 단면을 보니 흙과 돌을 채운 혼축식이다. 일부 하단부 체성은 장방형이다. 다듬고 손질해 쌓은 흔적이다. 민가에 돌담과 축대가 온통 성 돌이다. 성벽을 무너뜨려 쌓은 게 분명하다. 성안은 경작지와 묘 터로 변해 있다. 남문 터 오른쪽에도 토석 혼축 흔적이 보인다. 이어진 오른쪽 체성은 민가 뒤 언덕 붕괴 방지용 담장이 돼 있다. 마을 앞에 넓고 긴 수로가 있다. 수군진성을 방어하던 해자가 변했으리라.

진성 안은 동 서로 길이 나 있다. 성 터는 현재 사유지다. 서울에 산다는 주인이 평소 동문과 서문을 잠가 놓는다. 이 마을에 관리인이 따로 있다. 이분의 도움으로 문을 열 수 있다. 입구로 들어서자 오른쪽 축대 위로 묘역이 눈에 띈다. 그 앞에 향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이 마을 주민 얘기로는 본래 이 터에 고목 향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주인이 베어갔을 것이다. 축대 위 평탄지는 과거 진성 안 건물 터로 짐작된다. 진성 동문 입구에 첨절제사 영세불망비 5기가 서 있다. 2기는 비희(거북처럼 생긴 용)가 등위에 비석을 지고 있다. 남쪽은 고목과 숲이 우거진 구릉지다. 장대나 군기고 터가 있었음직하다. 진성안 한 가운데 평탄지는 너른 밭으로 변해 있다. 길 끝 서문 터에도 대문 겸 펜스가 쳐져 있다. 다행히 열려 있다. 밖으로 나서니 눈앞에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군선을 정박했다는 임치 포구는 썰물로 갯벌이 드러나 있다. 서쪽 성벽은 서문 터 양쪽으로 높은 절벽이다. 대나무 숲과 잡목이 자라고 있다. 외적이 배를 타고 육지에 접근한다 해도 오르기 어려운 지형이다.
◇가는 길 = 무안∼광주고속도로 무안I.C를 빠져나와 북으로 해제면소재지까지 달린다. 여기서 서쪽으로 가다보면 길가 왼쪽에 임수리 표지판이 나타난다. 도로를 따라가면 양쪽 대숲과 함께 고갯길이 보인다. 넘으면 바로 마을안길이다. 이 길은 마을을 지나 해안 끝 임치포구로 빠진다. 임치진성은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입구(동문 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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