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강과 남동쪽 백안들

   
▲ 남서쪽 탑바위

   
▲ 동남쪽 자연방어 절벽

   
▲ 무너진 체성 성돌

   
▲ 산성 정상에서 바라본 남강

   
▲ 산성안 정상 가는 데크

   
▲ 정상부 산성 안 평탄지.

   
▲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 들녘

   
▲ 혼축성벽 무너진 성돌

  경남 의령군은 삼국시대 초기 아라가야 세력권이었다. 부족국가 임례국 영역으로 비정된다. 임례국은 대가야 시대 바로 옆 안라국 영향권으로 추정된다. 남가야가 559년 신라에 합병되면서 같이 흡수된다. 이때 유적으로 고분군이 산재한다. 특히 운곡리 와 경산리 고분군은 국내 유일하게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준다. 신라 경덕왕 때 현 지명 의령현으로 개칭한다. 이때는 함안군에 속한다. 후삼국시대 호족 왕봉규가 다스린다. 고려 현종9년(1018년) 진주목 속현으로 의춘이라고 불린다. 공양왕3년(1391년) 신반현을 병합하고 감무를 파견한다. 지금 의령군은 고려시대 신번현과 인근지역 일부를 합친 영역이다.

14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왜군 15만8천명이 9개부대로 조선팔도를 유린한다. 그 중 고바야가와 다카가게(小早川隆景)가 이끄는 6군 1만5700명은 전라도를 노린다. 6군은 동래에서 함안을 거쳐 남강을 건너 의령을 친 뒤 육십령을 넘어 전라도로 간다는 전략이었다. 이들이 의령의 관문 남강 변에 도착한 것은 그 해 7월이었다. 이때 향리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 머물던 망우당 곽재우(1552∼1617)가 분연히 기병한다. 그는 과거 합격이 취소돼 벼슬에 뜻을 버리고 낙향해 낚시로 소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향리에도 왜군이 남강을 건너 곧 들이닥친다는 급보가 날아든다. 그는 마을 앞 느티나무(현고수)에 큰북을 매달고 가산을 털어 의병 규합에 나선다. 망우당은 남강에 낚시를 하러 자주 오간 터라 지형지물을 익히 파악하고 있었다. 남강 일대는 위험한 늪지가 많아 왜군은 미리 우회하는 표지목을 세운다. 이를 염탐한 의병들은 한밤중 몰래 표지목을 늪지로 옮겨 꽂는다. 그리고 모두가 남강 주변과 호미산성 등지에 매복한다. 이튿날 왜군은 일제히 도하를 시작한다. 그러나 모두 표지목을 믿고 가다 길을 잃고 늪지에 빠진다. 의병들은 고함을 지르며 일제히 화살을 날린다. 우왕좌왕하던 적들은 이들의 칼날에 몰살당한다. 이날 전투가 이른 바 ‘정암진대첩’이다. 관군도 아닌 의병이 왜군 공격목표 전라도를 지킨 전투로 평가된다. 이후 곽재우 의병진은 낙동강을 무대로 유격전을 펼치며 왜군 병참로를 완전히 차단한다.

임진왜란 전적지 정암진에서 남강을 따라 서쪽에 호미산이 우뚝 서 있다. 정확한 위치는 경남 의령군 정곡면 성황리 산78번지 일대다. 산의 형태가 호랑이 꼬리를 닮아 호미산이라고 불린다. 해발 100여m 야산이다. 이 산은 망우당 곽재우 생가 터와 매우 가깝다. 남강은 임란 창의 의병진이 매복해 있다가 적을 섬멸시켰다는 전적지다. 호미산 정상부 고대산성도 당시 전적지다. 이 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쌓은 성곽이 아니다. 고대 산성을 의병부대가 방어망으로 재활용한 셈이다.

형태는 산정 9부 능선을 따라 쌓았다. 축성은 겉으로 토성이었으나 발굴결과 초축은 석성으로 확인됐다. 남동쪽 강변은 깎아지른 절벽이 그대로 방어망이다. 따로 성벽을 쌓지 않은 것이다. 이 경우 남강은 해자가 된다. 북쪽은 하천 월현천이 해자가 된 셈이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남, 서, 북쪽에서는 성문 터 석축이 발굴됐다. 체성은 산 정상아래 해발 80~100m 지점을 따라 둥근 형태다. 안쪽으로는 폭 5~8m 회곽도가 확인된다. 전체적으로는 테뫼식 산성으로 분류된다. 체성은 둘레 430여m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은 약 토성 200여m만 옛 모습 그대로다. 터는 묘역과 채전이 개간돼 본래 모습은 대부분 훼손된 상태다. 초축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남강 변 일대는 일찍이 고대 군사요충지였다. 이에 임례국 시대부터 성곽 등 방어시설은 존재했을 것이다. 호미산에서 서쪽 400m 죽전리 진동고개에는 가야시대 돌방무덤이 널리 분포돼 있다. 이에 호미산성 또한 이 시대 성곽으로 추정된다.
 
답사 = 남강 변 호미산 중턱 불양암 주차장이나 반대편 북쪽 탑바위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된다. 불양암 주차장에서는 200여m 등산로 데크, 탑바위 주차장에서는 바로 앞 계단으로 오르면 된다. 두 코스 모두 탑바위와 호미산 고갯마루 갈림길에서 만난다. 호미산 방향은 산성 주출입구와 이어진다. 산성 위 공터에는 사사문정(역사와 문화를 생각한다는 뜻) 편액을 내건 정자가 서 있다. 누마루에 오르면 동북쪽은 정족면, 남쪽은 남강과 함께 백산리 들판이 조망된다. 체성은 좌우 어느 쪽이든 한 바퀴 돌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산 중턱 묘역과 입구에 펜스가 쳐진 사유지는 출입이 금지된다. 산성은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생가를 출발, 되돌아오는 둘레길‘부자길’에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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