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쪽 체성

   
▲ 남쪽 토축 성벽밖 전경

   
▲ 북동쪽 체성밖 전경

   
▲ 북문 터 추정 출입구

   
▲ 북쪽 출입구에서 바라본 성벽

   
▲ 서쪽 체성위 전경

   
▲ 성안 건물 터 추정 평탄지

   
▲ 승첩비

   
▲ 옛모습이 남아 있는 남서쪽 곡선부 체성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는 고려시대 처인부곡이었다. 오늘날 용인시 남사면을 중심으로 한 서남부 일대다. 용인시는 용구현과 처인현이 합쳐진 도시라고 보면 된다. 용인이란 지명의 ‘인’은 처인의 ‘인’에서 따왔다. 현재 처인구는 처인현보다 영역이 훨씬 넓다. 본래 처인현은 양지군과 함께 수원에 속했다. 조선 태조 6년(1397년) 현령을 두었고 태종 13년(1413년) 용인현과 합쳐진다.

처인이란 지명은 고려 현종이후 처음 역사에 등장한다. 처인현 군사행정 중심 치소는 아곡마을로 비정된다. ‘아곡’은 ‘관아가 있는 고을’이란 뜻이다. 이곳에 고대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곽이 있었다. 초기 성곽 명칭은 처인부곡성이었다. 부곡은 고려시대 특수행정구역이었다. 신분이 천한 기술자 집단이 거주했다. 그러므로 군이나 현과 달리 치소성을 두기에는 행정단위가 낮다. 그러나 처인부곡성은 이러한 부곡에도 치소성이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처인성은 고려 말 대몽항쟁을 통해 우리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고려 고종12년(1225년) 몽골은 사신 저고여 피살 사건을 빌미로 고려를 공격해온다. 몽골군은 질풍노도처럼 수도 개경을 지나 충주에 이른다. 고려 조정은 갑작스런 질주와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조정은 일단 몽골군 장수 살리타에게 화친의 뜻을 전해 양국 간 화의가 이뤄진다. 그러나 당시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는 강화 천도를 추진하는 한편 장기항전을 결의한다. 이에 몽골은 고종 19년(1232년) 8월 살리타를 원정군 총사령관(수장)으로 2차 침입을 강행한다. 살리타는 개경 근처에서 각 부대들의 남하 공격을 지시한다. 그리고 10월께 자신의 직할부대는 개경을 거쳐 한양산성을 함락하고 경기 광주산성을 공격한다. 그러나 광주부사 이세화가 이끄는 관민합동군에 의해 패퇴한다. 살리타는 다시 이 부대를 이끌고 바로 아래 처인성에 이른다.

처인은 당시 천민기술자집단이 사는 고을 ‘부곡’이었다. 처인부곡민들은 몽골군이 공격해오자 ‘처인성’에서 항전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때 승려의 몸으로 백현원에 있었던 김윤후도 이곳에 피난 와 있었다. 이들은 토성 밖으로 나가 몽골군 공격로에 매복한다. 그리고 얼마 후 앞장서서 말을 타고 공격해오는 살리타를 향해 김윤후가 화살을 쏜다. 살리타는 말에서 떨어져 숨진다. 전투가 불붙기 전 수장을 잃은 몽골군은 갈팡질팡한다. 몽골군은 수장을 잃으면 시신을 수습해 퇴각해야하는 관습이 있다. 이에 따라 그들은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난다. 김윤후는 전투는 지휘했지만 활과 화살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며 전공을 사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조정은 공로를 인정, ‘섭낭장’ 벼슬을 내린다. 이어 충주산성 방호별감을 맡긴다. 김윤후는 또 다시 몽골군을 격퇴시키고 충주를 방어하게 된다. 연이어 세운 큰 공으로 그는 마침내 고려군 최고계급 ‘상장군’이 된다. 처인부곡은 수주(오늘날 수원)에서 분리해 이후 조선조 처인현이 된다.

처인성은 경기 용인 남사읍 아곡리에 그 흔적이 완연하다. 아곡리는 용인에서 진위로 가는 길목이다. 또한 수원 오산 안성을 잇는 교통 요충지다. 성곽은 이 마을 남쪽 70여m 높이 자연구릉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용인현 고적조에 ‘현 남쪽 25리 토성으로 무너져 폐해졌으며 군창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를 비정해보면 토성이며 군창이 있었던 점은 명백하다. 산성과 평지성 형태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평면은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은 사다리꼴이다. 둘레 350m 체성높이 4∼6m에 이른다. 성벽은 남서쪽이 높고 북동쪽이 낮다. 토성 안 부지는 거의 평탄하다. 성문 터는 북쪽과 북동쪽에 두 곳이 있다. 지금 체성이 잘려 드나드는 출입문이 성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성은 자연지형은 그대로 살리고 낮은 곳을 판축공법으로 채웠다. 판축공법은 안팎 양쪽에 나무기둥을 줄지어 세우고 너른 판을 덧대 가운데 흙과 나뭇가지 나뭇잎 등을 채우는 축성방식이다. 너른 판 사이에 성질이 다른 흙을 번갈아 채워 꾹꾹 눌러 다짐을 하면 오랜 세월 견딜 만큼 튼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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