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이 재연할 조짐이다. 정부는 정원 확대 방침을 정하고 발표 시기와 증원 규모 등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 분업 당시 351명 줄었고, 2006년부터는 17년째 3천58명으로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 인구 10만명 당 의대 졸업자 수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슷했으나 의대 정원이 동결된 2006년 이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는 7.2명, OECD 평균은 13.6명이다. 그 결과 현재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2.1명으로 OECD 평균(3.7명)의 56% 수준이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보다 1천명당 의사 수가 적은 나라는 멕시코가 유일하다. 30년 후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의대 정원을 5천500명을 늘려야 하고, 지금 격차를 유지하려고만 해도 2천535명 증원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규모를 당초 수백 명대로 검토하다가 최근 1천명가량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전해졌으나 상황의 심각성에 비춰 이 정도로 충분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은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의대 정원 확대를 엇박자로 보고 있다. 정원을 늘릴 경우 10~20년 후에는 오히려 의사가 남아돌 것이며, 현재의 필수 의료 붕괴 문제는 수가 인상이나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 완화 등의 제도적 보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의료 수요가 줄 것이라는 예측은 비현실적이다. 2000년대 들어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하면서 의료 수요는 폭증했고,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할 전망이다. 실제로 의대 정원이 동결된 2006년 이후 간호대 정원은 두 배 이상 늘었다. 병원 찾을 일이 많아졌는데 의사 수는 그대로이니 곳곳에서 선진국 문턱에 있는 나라라고는 믿기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동네 소아청소년과 병원에서는 '오픈런'이 다반사고, 의사의 고유 업무를 간호사가 불법·편법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끊이지 않는다. 수가 인상 등을 통해 과목 쏠림 현상을 해소하면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의사의 절대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우리나라 의사의 연봉은 이미 OECD 최고 수준이다. 지방 의료원이나 특정 과목의 경우 4억~5억원의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의사단체가 지목하는 문제들까지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결국 의사 수 정상화다.

그런데 당장 2025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의사 부족에 따른 의료 체계의 불안정은 한동안 이어질 게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는 의사단체의 압력에 굴복해 국민의 건강권을 포기한 이전 정부들의 책임이 크다. 정부는 반발이 있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첫 번째 책무라는 점을 명심해 흔들림 없이 정책을 추진하길 바란다. 동시에 수가, 의료사고 소송 체계 등의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적어도 의사 수가 적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의 과도기에는 응급의학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같은 기피 과목에 대한 보상을 확대하고 필수, 지방 의료에 대한 체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의사단체도 현 시스템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해 개선을 촉구하되 국민 다수가 원하는 의대 정원 증원은 인정하는 것이 의료인으로서의 자세일 것이다. 아픈 국민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도외시한 채 이리저리 짜내는 '묘안'은 미봉일 뿐이다. 더는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정부와 의료계가 이번에는 오직 국민만을 염두에 두고 머리를 맞대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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