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의료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의대 정원 확대 이슈가 불거진 이후 윤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붕괴 위기에 직면한 필수·지역의료를 살려내려면 의사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분명한 인식과 의지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도 2025년 입시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할 방침임을 재확인했다. 2006년 이후 18년째 3천58명에 묶여있는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있다. 여야 정치권도 이 문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사들의 집단적 반발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정책적 의지와 정치환경, 여론의 삼박자가 모처럼 맞아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증원의 폭과 일정, 방식 등 세부 실행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다. 이미 정부 쪽에서는 확대 폭이 1천명을 훌쩍 넘고, 그 중점 대상이 국립대 등 지방 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섬세하게 세부안을 다듬는 접근 역시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명분이 있는 정책이라도 '숙성'이 되지 않으면 자칫 실패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도 "국민을 위한 정책 효과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현장 의료인, 전문가들과 충분히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 의료수요와 의사들의 입장을 모두 충족하는 최적의 안을 도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올 1월부터 14차례에 걸쳐 의료현안협의체를 열어 의대 증원 문제를 협의했으나 거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정부는 보다 열린 자세로 소통하고, 의사협회도 국민 건강권을 최우선에 두고 진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정부는 이날 '지역 완결적 필수 의료 혁신전략' 발표를 통해 전국 17개 국립대병원을 지역 필수의료의 중추로 키워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고, 그 지역에서 중증질환 치료를 완결하는 체계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KTX 타고 서울 대형병원 갈 필요 없이 가까운 곳에서 큰 병을 치료해주겠다는 얘기다. 여기에 필수의료 수가 인상, 필수분야 교수정원 확대, '지역인재' 선발 확대, 필수의료 종사자의 민·형사상 부담 완화 등의 방침도 제시됐다.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늘어난 의사를 지역·필수의료 분야에 유도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료계의 요청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소아과 '오픈런'(문 여는 시간에 맞춰 대기), '응급실 뺑뺑이' 등 어이없는 난맥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면 실효성 있는 실행방안을 짜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구성될 혁신 태스크포스팀(TF)을 통해 의사 확충뿐만 아니라 지역·필수 의료 확충을 위한 세부 대책을 정교하게 마련하기 바란다. 중요한 정책일수록 그 성패는 디테일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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