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흘렀다. 지난해 10월 29일 저녁 핼러윈 축제를 찾았던 159명의 희생자는 국가의 무관심과 통제받지 않은 혼란 속에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에서 목숨을 잃었다. 사고 이후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진행됐고, 국회에서는 국정조사가 이뤄졌다. 정부는 참사 1주기를 맞아 인파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위험 파악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의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또 주최·주관이 불분명한 축제에 대한 지자체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재난안전법' 개정안은 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나라를 뒤흔드는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나타나는 정형화한 패턴이다. 유족들이 사고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조치에 항의하고, 야당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나선 것도 비슷한 광경이다.

이태원 참사는 명백한 인재다. 그동안 참사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왔지만 사회적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인파 밀집이 뻔히 예측되는 상황에서 초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국가와 정부의 책임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겹쳐 놓은 여러 장의 치즈 구멍이 우연히 일치했을 때 사고가 터진다는 것이 소위 '스위스 치즈 이론'이다. 구청, 경찰서, 소방서 등의 기관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위험을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 인력, 예산 등을 통해 구멍의 숫자와 크기를 줄이고 치즈의 배치를 조정하는 것은 좀 더 넓은 차원의 문제다. 한덕수 총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라고 강조했으나 지금까지는 처벌과 대책이 지나치게 실무선에만 초점을 맞추는 듯한 느낌이다. 앞으로 이런 참사가 더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이태원 참사 후에도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사고, 오송 지하차도 사고 등으로 많은 국민이 세상을 떠났다.

큰일이 터지면 그 부분에만 집중해 호들갑을 떨다가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되는 '두더지 잡기' 게임식 대응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그렇게 하면 비슷한 사고는 한동안 줄 수도 있겠지만 전혀 다른 형태의 참사가 언제, 어디서 또 터질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국가 시스템의 전반적 수준과 국민들의 안전 의식이 높아져야 한다. 그런데 의식과 관행, 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결국 제도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국회의 책임은 막중하다. 사회 곳곳에 퍼진 안전 불감증,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산업 현장의 관행, 현장은 소홀히 한 채 윗선 눈치만 보는 관료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참사의 정치적 책임을 놓고 1년째 정쟁을 벌이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야 모두 되돌아보길 바란다. 세월호에서 이태원, 오송 사고까지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국민들 볼 낯이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도돌이표 돌림 노래를 반복할 것인가.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