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회는 숱한 관계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간 사회는 상호 조종과 조작의 관계의 총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적 존재성이 특히 부각되는 지점이다. 상호 조종과 조작은 직접적·물리적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초적이고 저급하며 일시적 수준의 관계에 머물 뿐이다. 반면 언어에 의한 상호 조작과 조종은 근본적이며 영속적인 특성을 지닌다.
언어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서로 다른 언어 간의 갈등과 충돌이 빚어지는가 하면, 같은 언어 내에서도 어떤 형식과 내용을 담아낼 것인가를 두고 반목과 대립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었던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권위주의 체제가 지탱되어 오면서 언어도 그에 맞게 경직되어왔다고 진단할 수 있다. 외양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그에 걸맞는 토론 문화가 부족했고 상층부에서 일방적으로 하달하는 일방통행식 언어문화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였다.
지도자의 덕목으로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통합하는 능력보다는 과묵하고 한두 마디로 교시를 내리듯 지시하는 과단성이 더 중시되었다. 이러한 문화가 계속해서 진행된 상황에서 민주화로 일거에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은 서서히 많은 것을 바꿔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언어와 관련된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과도기이기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운 면도 많아 보인다. 참여정부 시절 많은 사람들, 특히 식자층을 비롯한 여론 주도층들이 대통령의 언변을 문제 삼아 ‘자질론’을 들먹였던 것도 이런 과도기에서 빚어진 혼란이라고 판단된다.
정치와 민주주의는 말의 힘으로 작동한다. 경쟁자를 설득하고 시민을 감동시켜야 유능한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자기 감정을 분출하며 드세고 저급하고 폭력적인 말이 지배하는 정치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정치 혐오를 키울 뿐이다.
최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주고받는 막말이 부쩍 늘면서 국민들에게 불신을 주고 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해 “어린놈이 선배들을 능멸했다”고 공격했다. 그의 막말은 출판기념회에서 검찰의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거래 의혹 수사를 비난하면서 나왔다. “무슨 중대한 범죄라고 6개월 동안 이 지×을 해. 미친놈들” “건방진 놈”이란 말이 이어졌다. 전직 제1야당 대표의 발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전당대회 돈봉투 거래 사건은 정당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든 범죄이다. 한 장관을 비판하려면 자신의 혐의를 소명하고, 한 장관 잘못을 설명하면 되는데 이런 막말은 국민적 불신만 키울 뿐이다. 여야 정치인끼리 주고받는 막말들을 보면 기가 찬다.
특히 국회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 등 의사일정 전반에서 상대 진영을 향한 의원들의 비난과 막말, 고성은 일상이 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막말 발언은 그 수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시민들의 의사를 고르게 대변하고 상호 존중과 타협을 통해 차이를 좁혀야 할 국회가 사생결단의 전쟁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여야 할 것 없이 서로 경쟁하듯 막말을 쏟아 놓고 있다. 심지어는 방송을 통해 전 국민이 시청하는 국감 현장에서도 입에 담기 힘든 쌍욕과 인격 모독성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막말은 정치 불신과 혐오를 부르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한번 내뱉은 막말은 국민의 지탄 받을 뿐 아니라 나중에 잘못을 사과해도 용서받기 힘들다.국회의원 등은 지역민, 나아가 국민을 대표하는 신분이기에 공적인 자리에서는 심사숙고해서 말해야 한다. 정치인의 막말, 국민이 언제까지 들어야 할지 괴롭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존재감 과시와 입지를 다지기 위해 막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지닌 지위에 걸맞은 언행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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