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무역 확대를 골자로 한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폐막했다. 21개 회원국 정상은 '2023 골든게이트 선언'을 통해 무역 확대와 자유화, 부패 척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 기간에는 세계인의 이목이 쏠렸던 미중 정상회담 등 다양한 양자 정상회담도 이뤄졌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미일 3국 정상회동과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양자, 3자 간 공조와 협력 기조를 재확인했고, 칠레, 페루, 베트남, 캐나다, 멕시코 등 정상과도 연달아 만났다.

다만 관심이 모였던 한중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윤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APEC 회의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3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윤 대통령과 시 주석 간 별도 회담이 이뤄졌다면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첫 회담 이후 1년 만으로 한중관계 회복의 속도를 더 높일 변곡점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회담 불발은 아쉽다. 시 주석은 APEC 회의 기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약 4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했고, 일본 총리와도 별도 회담을 했다. 또 멕시코·페루·피지·브루나이 정상들과도 만난 것으로 전해졌는데, 한중 정상회담은 열리지 못했다.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았다는 얘기들이지만, 중국의 전략적 우선 순위에서 한국이 밀렸다거나, 중국이 회담 개최를 카드로 쓰며 우리를 압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올 만하다.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지만 한중 정상회담 불발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대중국 외교의 과제를 보여준다.

한중관계는 수교 31년이 지나는 동안 크고 작은 부침을 거듭해 왔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때는 수교 이후 최악으로 악화하기도 했다. 양국은 그럴 때마다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해법을 모색해 왔다. 현정부 출범 이후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공조가 깊어지며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관계를 복원하고 강화하는 것은 한중 두 나라 모두의 이익이다. 우리의 전략적 판단과 외교 노력을 배가할 필요성이 있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성사를 위해 이르면 이달 말 한국에서 3국 외교장관회담이 개최될 것으로 전해진다. 연내 또는 내년 초 3국 정상회의 개최도 추진되고 있다. 이를 대중국 외교 동력을 유지하고 한중관계 복원의 속도를 높일 기회로 활용하기 바란다. 미국과 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파국을 피하고 관계 안정화와 관리에 사실상 나섬에 따라 한국 외교의 공간은 더 넓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우리 정부도 중국과의 실리 중심의 외교를 확대할 방안 모색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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