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행정전산망 마비사태의 원인이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장치)의 포트 불량으로 드러났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행정망 서버를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대전 본원과 광주 분원을 연결하는 장비인 라우터에 케이블을 꽂는 포트 3개가 손상된 게 서비스 장애의 원인이었다는 설명이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당초 전산망 먹통의 원인으로 네트워크 장비인 'L4 스위치'를 지목한 바 있다. 그러나 L4 스위치를 교체했는데도 데이터 전송 지연 현상이 나타나 라우터를 분석해보니 포트의 물리적 손상을 발견했고, 다른 포트로 옮겨 선을 꽂았더니 네트워크가 정상 가동됐다는 것이다. 해킹 등 외부의 공격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행정전산망 부품 관리 부실이 초유의 장시간 먹통 사태를 일으켰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의문을 말끔히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 우선 라우터 포트 불량을 찾는데 일주일이라는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포트 불량은 전기가 들어오는 전원 콘센트처럼 선을 옮겨 꽂으면 해소되는 비교적 단순한 장애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장애 사고가 나면 포트 점검부터 하는 건 기초에 속한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측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고장이라고 하나 일일 육안 점검 등 평소 장비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평소 점검을 꼼꼼히 하는데도 부품이 손상됐다면 왜, 언제, 어떻게 망가졌는지, 또 이전에 비슷한 불량 사례가 있는지 설명을 내놔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문제가 된 라우터 사용 기한은 내후년까지로, 정보자원관리원 측도 해당 장비 손상이 노후 탓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앞으로 근본적인 관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사고 원인과 관련해 좀 더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지난 17일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를 포함해 정부 기관 전산망이 장애를 일으킨 것은 최근 1주일간 4건에 달한다. 연중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일주일 새 연달아 터진 것이니 세계 최고의 디지털 선진국에 산다고 자부해온 국민들로선 낭패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행안부는 지난 25일 대국민 보고대회를 열고 '디지털플랫폼 정부'의 혁신사례 등 추진 성과와 비전을 발표했다. 대회 전날엔 '모바일 신분증 발급 서비스'가 장애를 일으켜 부스 운영마저 중단됐다고 하니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일련의 국가 전산망 오류 사태를 두고 기본을 망각한 디지털 행정이 빚어낸 인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행정전산망이 문제 없이 가동되기 위해선 정기 점검은 물론 운용 및 오류 대응 매뉴얼과 이중화된 오류 복구 시스템 등 인프라가 단단하게 구축돼 있어야 하는데, 지금껏 정부가 이런 본질적인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적 영역의 디지털 인프라가 선진 기준에 미흡한 게 아닌지 파악하면서 운영 체계의 효율화에 적극 나서길 촉구한다. 아울러 행정전산망 인프라를 구축한 시기로 돌아가 설계부터 완공까지의 전 과정을 촘촘히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더는 '디지털 코리아'의 국격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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