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을 빛낸 인물 특집]

▲ 포항철길숲에 11일 세워진 남대영 신부 동상. 가톨릭 예술인 고수영 작가가 제작했다.

   
▲ 11일, 제막되는 남대영 신부 동상

   
▲ 동상제막식 기념사진

   
▲ 남대영 신부 동상을 축성하는 최재영 신부

   
▲ 남대영 신부 고아를 안고 있는 사진

   
▲ 남대영 신부 고아와 서 있는 사진

   
▲ 남대영 신부 망토안에 아이들과 서 있는 사진

   

   
▲ 남 신부의 어록이 새겨진 비, 대구 앞산자락 남대영기념관 입구에 세워져 있다.

   
▲ 대구시 앞산 자락 남대영 기년관 전경

   
▲ 인형으로 제작된 고아들과 성자 남대영 신부

   
▲ 남대영 신부 프로필 사진

   
▲ 남대영 신부의 사랑의 길 자료사진

   
▲ 고아들과 함께하는 남대영 신부

   
▲ 대한민국에 묻히길 바랐던 남대영 신부

   
▲ 조선인들과 함께하는 남대영 신부

   
▲ 조선인들과 함께하는 남대영신부2

   
▲ 남대영 신부의 일기와 묵상글

   
▲ 남대영 신부의 친필 자료와 받은 편지들

   
▲ 남대영 신부가 사용했던 각종 사진기

입국 100년·선종 51주년 맞아 동상 제막
1923년 프랑스 선교사로 조선 들어와
일제 탄압·한국전쟁 위험 굴하지 않고
포항 전쟁고아·한센환자 등 약자 돌봐
고국 돌아가지 않고 포항 땅에 잠들어
시,'포항을 빛낸 인물' 선정해 정신 기려



5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인물이 있고, 100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그리워하며, 그 이름이 더욱 빛나는 인물이 포항에 있다.

포항을 빛낸 인물, 남대영(루이 델랑드, Louis Deslandes, 1895.6.13.~1972.11.17.)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는 남대영 신부가 1923년 조선에 첫발을 디딘 지 100년, 1972년 선종(善終)한 지 51년째다.

포항시는 남대영 신부의 자애를 바탕으로 한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해 '포항을 빛낸 인물(2013년)'로 선정했다. 올해 남 신부의 입국 1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동상을 지난 11일 포항철길숲 한쪽에 건립했다.

동상의 제작은 가톨릭 예술인 고수영 작가가 맡았다.

제막식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겨울비가 세차게 내렸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 최재영 신부를 비롯해 이강덕 포항시장, 백인규 포항시의장, 남찬교 대경일보 회장 등 내외빈 200여명이 참석해 남 신부의 덕과 정신을 기렸다.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 남대영 신부는 누구보다도 포항을 사랑했다. 그는 한평생 먼 이국에서 포항인을 위한 사랑 실천으로 헌신의 삶을 살았다.

남 신부가 미션을 수행하는 사이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았고, 공산군을 물리쳤다. 국가가 이토록 고단하고 분주했던 시절, 남 신부는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가장 낮은 곳에 스스로 몸을 내던졌다.

남 신부가 포항 송정해변에서 전쟁고아, 한센환자, 장애인, 성매매 여성 돌봄을 시작한 때 대한민국은 6·25전쟁이 한창이었다. 현재 송정해변에는 포항제철이 우뚝 서 있다. 남 신부는 포항제철에 이 자리를 선뜻 내줬다. 그때 세워진 포항제철은 대한민국 산업화 현대화의 발판을 거뜬히 깔아냈다.

포항 송정을 떠난 지 얼마 후인 1972년 11월 17일, 그는 포항시 오천읍 갈평리 제2성모자애원에서 새벽 강론을 준비하던 중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77세. 그는 자신이 목숨을 바쳐 섬겼던 천주의 곁으로 올라갔다.

그의 유해는 고국 프랑스로 가지 않았고 포항 땅에 묻혔다. 그는 지금도 헐벗고 굶주리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인데 마는..." 이라는 그의 말처럼 절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천국에서 애타게 기원하고 있다.

남대영 신부의 발자취는 이날 포항철길숲에 세워진 동상 외에도 대구 앞산 자락 예수성심시녀회·남대영기념관(남구 현충로2), 포항 갈평사제관·남대영신부 기념관(오천읍 기림로 1634), 예수성심시녀회 모원묘지(남구 대잠길 85)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