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세종대 교수

23. 영국 문화 전통의 이븐송

옥스퍼드대 여러 칼리지에 채플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다양한 이븐송(저녁 찬양)이 개최된다. 몇몇 주요 칼리지의 경우 원래 신학교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학문 분야로 대학을 확대해 나갔기 때문에 칼리지 내에 역사와 전통이 있는 채플이 함께 있다. 일전에 내가 직접 성가대에 참여해서 경험했던 크라이스트 처치의 이븐송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저녁에 열리지만 다른 칼리지의 경우 사정에 따라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개최되는 곳이 많다.
1549년경에 시작되어 근 500여년의 전통을 지닌 합창 음악은 종교적 헌신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는 교회 예배로 활동적인 낮과 편안한 밤의 중간지점에서 45분간 조화롭게 울려퍼지는 문화행사이기도 하다. 이븐송 예배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다른 교회 예배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영국 성공회의 예배 형태가 교회에 따라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같은 교회내에서도 주일에 몇 번 드리는 예배 스타일을 다 다르게 하는 경우가 있다. 소위 말해서 근엄한 예식 중심의 천주교 스타일에서부터 온갖 악기가 동원되어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개신교 스타일 까지 전부를 포괄하는 교회도 있다. 자신의 선호도를 참고해서 예배 시간과 예배 형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1926년부터 시작된 BBC 라디오 3의 ‘합창 이븐송’은 현재도 매주 수요일에 생방송되고 일요일에는 영국 전역에서 반복 방송되는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방송이기도 하다. 신앙고백과 사도신경도 있고 찬송가도 부르지만, 조화로운 찬양으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안식의 시간으로 여기고 있다.
이븐송의 기원은 예수님께서 인도하셨던 제자들과의 예배와 유대인이 특정 시간에 기도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므로 그 배경은 상당히 종교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 종교개혁 시대 옛 수도원의 예식과도 연결되는데,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는 의식적 특징을 지니는 전례는 1549년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 대주교의 '공동 기도서'에 명시되어 있다. 영국의 이븐송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통치 기간에 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540- 1623)와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 1505-1585)와 같은 작곡가들이 새로운 예배를 위해 특별히 정교한 다성 합창 음악을 개발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영국과 아일랜드 전역에 걸쳐 500년 동안 이어져 온 합창은 다양한 노력으로 수준 높게 유지되고 있다.
공공예배가 라틴어로 되어 있고, 일반인들이 성경에 정통하기도 어려우므로 일반대중을 염두에 두고 이븐송 같은 형식을 고안해서 공동체 의식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하루를 마무리 하며 아름다운 채플에 모여 들면 아주 공명이 잘되는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평화로운 음악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고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예배 드리는 곳이라기 보다도 각종 합창과 오케스트라 등 음악 공연을 누리는 문화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라도 해서 일반 대중이 교회에 모여들게 하여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삼을 수도 있다. 또한 각종 합창과 오케스트라 음악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 많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믿음을 갖지 않는다고 해도 문화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앙과 맥을 닿고 있는 것이다.

크랜머의 이븐송은 다윗 왕이 수금을 들고 구약성서 시편을 노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배의 중요한 점은 여성과 남성, 젊은이와 노인, 구약과 신약이 이 성가곡에서 균형을 이룬다는 점이다. 물론 남성 합창단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포함하여 교회 음악이 다양하게 연주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은 시대에 맞는 신앙 형태를 구성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자 하나님을 믿는 마음은 같을지 모르더라도 시대에 맞게 예배 형식이 변화해 나가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에서도 교회가 너무 세속화되어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진실된 신앙도 지키면서 시대에 맞는 예배 형태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종교의 유무를 떠나 인간과 역사를 이해하는 한 방편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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