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로 여권 인적 쇄신의 물꼬가 트이면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비상이 걸렸다. 혁신은 뒷전이고 집안싸움만 골몰하는 사이 총선 승리와 직결된 쇄신 경쟁에서 허를 찔린 것이다. 물론 민주당에서도 간간이 불출마 선언이 나왔지만, 당의 주류가 기득권을 과감히 내려놓는 차원의 자기희생은 보여주지 못했다. 당 지도부부터 혁신을 머뭇거리는 사이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 추진이 오히려 초점으로 부각되는 양상이다. 이대로 혁신의 주도권을 여권에 빼앗기게 되면 총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당내에 감돌고 있다.

지난 10 ·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자축하기보다 '승자의 저주'를 경계하자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 바로 민주당이다. 선거에서 진 쪽이 내부 혁신을 거쳐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바짝 몸을 낮췄지만, 거기까지였다.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당의 체질과 면모를 일신하려는 변화와 혁신의 모습을 읽을 수 없었다. 그나마 여당인 국민의힘은 인요한 혁신위가 당 주류의 희생을 압박하며 혁신 분위기를 끌어올렸지만, 민주당은 현 이재명 대표 체제 강화에 몰두한 채 당의 내홍만 키웠을 뿐이다. 그 여파로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행보가 이어지면서 당 자체의 원심력도 커지고 있다. 보궐선거 승리의 효과는 사라지고 혁신의 동력도 찾지 못한 '잃어버린 두 달'이었다.

민주당이 그동안 혁신안이라고 내놓은 것은 대의원제 개편과 현역 하위 10% 감점 강화 정도다. 그마저도 대의원제 개편은 사당화 논란만 키우고, 현역 하위 10% 감점 강화는 비주류에게 공천 불이익을 주려 한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혁신의 핵심은 인적 쇄신이다. 앞서 김은경 혁신위는 지난 8월 3선 이상 중진의원의 동일 지역구 공천을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하다가 당의 강한 반발을 우려해 공식 안건이 아닌 개인 의견으로 '다선 용퇴'를 권고했다. 이후 불출마를 선언한 중진은 박병석(6선)·우상호(4선) 의원뿐이다. 그나마 초선 중에서 오영환·강민정·홍성국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탄희 의원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를 주장하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전히 박지원 전 국정원장,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 '올드보이'들의 출정 채비가 주목받고 있는 게 민주당의 현주소다. 민심에 다가가려면 지도부를 위시한 주류가 과감히 희생하고, 그 자리에 참신한 인재들이 들어와야 한다. 비주류에서는 이 대표와 지도부, 586 중진, 친명(친이재명)·비명(비이재명)계 대표인사들이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희생과 결단을 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시스템 공천'이 우선이라며 인위적 중진 물갈이에 선을 긋고 있다. 이달 말 공천관리위원회가 꾸려지면 공천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적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정쟁으로 얼룩진 21대 국회에 대한 극도의 국민적 불신 속에서 치러지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누가 더 새로운 정치의 면모를 보이느냐는 경쟁이라는 점에서 민주당의 대응은 너무 안이하다. 지금은 여권 지지율 부진에 따른 반사효과에 가려져 있지만 민주당 역시 강성 팬덤, 당 대표 사법 리스크, 각종 비리사건 등으로 총체적 위기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온전히 민주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흔들리는 민심을 부여잡으려면 기득권을 과감히 내려놓고 쇄신의 승부수를 띄우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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