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김기현 당대표 사퇴로 지도부 공백에 처했다. 총선이 불과 넉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국정운영의 책임을 분담하는 인사가 물러난 것이라 낯설고 당황스럽다. 두 달 전 여당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에도 자체 쇄신 작업이 차질을 빚는 지리멸렬한 상황이 김 전 대표를 사퇴의 길로 내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양새가 그렇다는 것이지 그 깊은 수렁의 바닥에는 30%대에서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자리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는 고사하고 총선 참패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여권 전반을 덮친 불안감이 김 전 대표에게 결자해지를 요구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김기현 전 대표의 경우 주류 친윤계의 전폭적 지원 덕에 당선된 태생적 한계 탓인지 몰라도 용산 눈치를 보고 쓴소리를 못 한다는 비판이 컸던 게 사실이다. 정권 초반엔 대통령의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여당이 정부와 단합된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여의도 출장소'라는 비아냥을 듣고 민심의 외면을 사기 마련이다. 당정관계가 수직 내지 직할 체제가 되면 국정운영이 일방주의로 흘러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괴리되곤 한다. 정권교체의 원동력이었던 중도층이 등을 돌린 것도 결국 당이 내부 견제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일 수 있다.

국민의힘은 내주 임시 지도부 격인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총선 준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민 눈높이에 맞고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한다는 방침인데,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한동훈 법무부장관,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 등 여러 인사가 적임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당을 이끈다 한들 자기희생과 당정관계 재정립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뼈를 깎는 구조 혁신이 뒤따르는 게 중요하다. 친윤 불출마와 영남 중진 물갈이, 대중 인지도가 높은 '셀럽 공천' 등 기존의 식상한 이벤트로 화난 민심을 돌려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가깝게는 인요한 혁신위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인 전 위원장은 혁신위 출범 일성으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겠다"고 했지만, 당에만 희생을 요구해 되레 분란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친윤계의 상징인 장제원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김 전 대표가 사퇴한 와중에도 대통령실에서 나온 일부 참모와 전, 현직 장관은 강남과 분당, 영남 등 보수 텃밭에 공천받으려고 아옹다옹하고 있다고 한다. 총선 민심을 논하기 전에 '웰빙 정당'의 체질 개선부터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여권이 당면한 위기는 정작 내부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여권은 우선 차디찬 민심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환골탈태에 나서야 한다. 여권을 구성하는 모든 이가 희생을 감수한다는 자세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비대위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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