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0일 새해 예산안의 증·감액 규모와 내용에 최종 합의하고 21일 오전 본회의를 추가로 열어 통과시키기로 했다. 헌법에서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12월2일)을 19일이나 넘긴 것이자 3년 연속 지각 처리다. 그나마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처리라는 초유의 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다. 여야의 기싸움이 가열되면서 예산안 협상이 해를 넘겨서 준예산을 집행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왔지만 최악의 경우는 피했다. 언제까지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정시한마저 어기면서 뒤늦게 졸속 심사를 반복하는 구태를 되풀이할 건가. 나라 살림을 정쟁의 볼모로 삼는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이 더는 재연돼선 안 된다.

여야가 합의한 예산안 내용을 보면 내년 예산 규모는 정부 원안인 656조 9천억원 선이 될 전망이다. 정부안에서 4조2천억원을 깎되 감액된 만큼 최대한 증액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의 대폭 삭감으로 현장의 반발을 샀던 연구개발(R&D) 예산을 6천억원 확대하고 전북 새만금 사업 관련 예산을 3천억원 늘리기로 했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위한 예산 3천억원도 새로 반영하기로 했다. 예산안 최종 합의 후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야당 입장에서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했지만 민주당의 요구가 상당부분 관철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의식하며 대립을 반복한 측면이 적지 않았던 점에서 여야 모두 되돌아봐야 한다. 예산안이 확정된 만큼 정부도 집행에 차질 없도록 준비를 다하기 바란다.

여야가 우여곡절 끝에 예산안 처리라는 큰 고비를 넘겼지만, 민생과 직결된 주요 쟁점 법안 협상은 대부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 유감이다. 국민의힘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2년 유예 법안을 비롯해 산업은행 본사의 부산 이전법과 우주항공청 설치법 처리를, 민주당은 전세사기 피해 구제 특별법을 비롯해 온라인플랫폼 갑질 방지법과 법정이자율 초과시 계약을 무효로 하는 이자제한법을 각각 중점법안으로 정하고 연내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아파트 실거주 의무를 폐지한 주택법 개정안의 경우 갭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는 야당의 반대로 국토위에 발이 묶여 있다. 연내 주택법이 처리되지 못하면 정부와 국회를 믿고 청약에 나선 이들이 대혼란을 겪고 연쇄 전세난이 발생해 부동산 시장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지금 정치권에 주어진 책임은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름하는 국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다. 국회는 오는 28일 올해 마지막 본회의를 열 예정이다. 그 전에 밤을 새워서라도 협상에 진력해 민생과 관련된 주요법안 처리 협상을 타결짓기를 바란다. 이견 앞에선 한 발짝 양보하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임을 잊어선 안 된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