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세종대 교수

  2023년을 마무리 하는 마지막 날 나는 NGO활동을 하는 인도-벨기에 출신 부부 집에 초대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둘레길로 걸었는데 옥스퍼드에 와서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웠는데 옥스퍼드 주변 길을 걷는 모임이 있다고 해서 참석하게 되었다. 걷기에 관심 있는 불특정 다수의 모임이었는데, 고고학자, 사회학자, 공인회계사 등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걷는 중간에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펍에 들렀을 때 인도-벨기에 출신 부부가 내 옆에 앉아서 나에게 차와 빵을 구매해서 대접해 주어서 자연스럽게 대화로 이어졌다. 걷는 것을 마친 후 갔던 또 다른 펍에서도 그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부부가 갑자기 나와 몇 명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 것이다.

2023년도 12월 31일 오후, 일반 회사를 다니는 영국인, 파키스탄 출신 감옥 간수였던 영국인 그리고 나는 그 부부와 함께 시골 마을을 산책하였다. 마을 중심에 교회가 있고, 1743년에 건축된 곳에서 펍이 운영되며 8천여명이 거주하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 풍경이 좋아서 이들도 5년 전에 이곳으로 와서 영주하고 있다고 한다. 옥스퍼드 근교의 조용한 마을에서 주민들끼리 서로 인사하고 다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집 근처에 광활하게 펼쳐진 초지를 따라 1시간 반정도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차가운 겨울 바람의 한기가 스며들기도 하지만 시원한 느낌이 있어서 상쾌하였다. 지나가다 특별하게 생긴 돌담이 궁금하여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노인들에게 질문을 던져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받아 주어서 좋았다.

벨기에 출신 부인은 사회학자이면서 인도에서 요가를 가르쳤던 요가선생님이기도 해서 집에 돌아와서 나는 요가 훈련을 하자고 요청 하였다. 그녀는 흔쾌히 나의 의견을 들어 주어서 요가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고, 요가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상태에서 다시 차를 마시며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각국의 민요를 돌아가면서 부르면서 음악과 대화, 차와 간식 등이 어울어지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모두가 알만한 음악을 찾다가 발견한 동요에 간단한 율동을 곁들이게 되자 다같이 일어나 웃고 노래하며 몸동작까지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동심으로 되돌아 갔다. 꼭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가 흘러가는대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 8시가 넘어서 인도식 카레로 저녁을 먹고 난 후 남아프리카에서 온 교수 부부가 저녁 9시경에 합류하였다. 그들은 다른 집에 초대되어 파티를 즐기다가 뒤늦게 이 집의 신년맞이 파티에 합류한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물리학 교수의 인도계 부인은 집주인이 두드리는 뮤직 박스의 비트에 맞추어 힌디어로 인도의 민요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아프리카 정치 경제 현황이나 만델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영국과의 경제적 유착 관계 및 세금 문제 등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11시 20분경이 되니 마을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집주인을 포함하여 모두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나는 교회를 가 봐야겠다고 해서 집주인과 함께 나와 교회를 갔다. 그 교회의 종은 300년이 넘은 것이라고 하는데, 매년 신년맞이 저녁에 종을 울리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교회 종탑에 걸린 종을 치기 위해 교회 안에서 7명이 서로 박자를 맞추며 조화롭게 긴 줄을 잡아 당기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노신사가 있어서 그분에게 이 마을의 신년맞이 전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교회를 다녀온 후 거의 12시가 되어가자 모두가 분주하였다. 12시 정각을 맞추기 위해 시간을 설정해 두고 그 시간에 맞게 모두가 일어나 손에 손을 맞잡고 스코트랜드 민요인 올랭자인(Auld Lang Syne)을 부르면서 2024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밖에서는 새해를 알리는 축포가 쏟아졌고 집 안에서는 서로를 안아주면서 새해를 축복해 주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케이크에 불을 붙여 우리만의 신년맞이를 축하하였다.

신년맞이 축하 케익을 먹기까지 10시간이 넘도록 대화하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고 또 대화하고 웃고 떠드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 부부도 영국에 거주한 5년 동안 이번이 가장 특별한 새해맞이를 했다고 즐거워하였다. 마음을 열고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손을 내밀면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험하게 되었다. 민족도 종교도 배움의 많고 적음도 상관없이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어울릴 수 있는 사회는 스스로의 조그만 실천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새겨지는 새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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