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열 편집국장


언론 종사자로서 최근 일어난 대비되는 두 사건으로 인해 잠시 펜을 들었다.

이후 언급할 두 사건은 언론의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과 언론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던 인기 배우 이모씨가 세상을 등졌다. 유서 내용 중, 남겨진 부인과 자녀들이 감당해야 할 큰 부담에 대한 미안함이 담긴 것을 볼 때 역(逆)으로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살아서 남편과 아버지로서 가정에 주어질 부담을 덜어줘야 마땅한데, 도리어 가족에게 큰 부담만 남겨주고 떠나야만 하는 가장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결국 가고 싶지 않던 그 길, 돌아올 수 없는 그 길을 떠나고야 말았다.

지금껏 밝혀진 바로는 경찰의 노골적인 공개수사와 언론의 마녀사냥식 보도 형태가 그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고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④항의 무죄추정의원칙[형사피고인(刑事被告人)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을 생각해 볼 때 이씨에게 가해진 사회의 압박은 너무나 컸다.

헌법 제27조가 말하는 형사피고인은 경찰 수사를 거쳐 검찰로 넘어간 사건의 피의자 중 재판이 시작된 범죄혐의자를 말한다. 그런데 이씨는 경찰의 수사 단계에 있던 단순히 형사피의자이지 형사피고인이 아니다. 쉽게 말해 고발당해 이제 겨우 경찰 조사받던 단계를 말한다.

경찰이 공개수사를 선택함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KBS 등 주요방송사가 주요 뉴스로 다룸으로 걷잡을 수 없이 사건은 확대됐다.

‘피의사실을 공개함을 죄로 본다’는 피의사실공표죄(被疑事實公表罪)는 명문화된 법 조항(형법126조)이니 이를 어긴 자가 있다면, 법에 따라 처벌받으면 될 것이므로 수사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는 도를 넘는 언론의 개인사생활 보도에 있다. 앞서 발생한 전청조 사건에서도 방송사는 비슷한 보도 행태를 보였다. 3류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노골적인 성관계 묘사와 적시 등 부모와 형제, 친척, 지인들이 수용하기 부담스러운 선정적인 내용들을 버젓이 방송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적으로 내보냈다.

연인 사이에 벌어졌던 막장드라마 같은 내용 보도를 통해, 말초적인 자극 외에 국가와 국민이 얻은 이익이 과연 뭔가.

이씨 사생활에도 방송사는 같은 유형의 보도 행태를 취했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는 이씨와 유흥업소 A실장의 전화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방송이 계속될수록 이씨는 마약범으로 국민 머릿속에 각인됐고 그의 부인(否認)하는 말은 (마약 성분 미(未)검출에도 불구하고) 변명으로 들려졌다.

문제는 유명배우가 가진 이미지를 상품화해 광고를 찍은 기업들의 계약 위반 지적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부담이다. (이씨가 부담해야 할) 위약금이 거의 100억원을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배우 한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벅찬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죽음으로 모든 경찰 수사는 종결됐다. 그가 마약을 한 건 지, 아닌지도 이젠 알 길이 없다. 인기를 먹고 사는 배우에게 이미지 실추는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결국 이미지 실추는 물론 생명까지 잃었다.

마약범으로 몰고 간 경찰의 공개수사와 막가파식 언론 보도, 억울함을 호소해도 이미 굳어진 듯 보인 사회 분위기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지난 2일 발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테러 사건이다. 이재명 대표의 테러는 3일 조간신문 1면탑 기사이거나, 모든 신문의 1면에 게재됐을 정도로 전 국민적 주요 관심사였다.

이 대표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생명엔 지장이 없는지, 얼마 동안 치료받아야 하는지, 테러범과의 관계, 닥터헬기 요청 주체, 그가 매 주일 받는 재판 진행 여부 등 관련 궁금증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경찰과 소방, 부산대 병원, 서울대병원, 더불어민주당까지 상황을 명확히 밝히 알려주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이후 치료를 담당한 서울대병원이 사회적 압력에 굴복, 이틀이 지나서야 긴급 브리핑을 했지만, 대부분 이미 알려진 내용이었을 뿐 기자들이 실제 궁금해하는 질문조차 받지 않고 퇴장했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도 관계기관은 사실 그대로를 밝혀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마땅하다. 2006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11cm(깊이 1~3cm) 얼굴 상처를 낸 커터칼 테러와 2015년 리퍼트 주한 미대사에 대한 과도(果刀) 테러에서도 관계기관들은 국민의 알권리 해소를 위해 수사 진행 상황과 치료 과정을 시시각각 발표했다.

설사 이러한 자료가 나오지 않더라도 언론사는 모든 인맥과 정보망을 총동원해 관련 사실을 신속·상세하게 보도해왔다.

관계기관이 관련 내용을 공개 않고, 언론이 취재해 보도조차 않으니 각종 SNS 상에서 음모론과 각종 루머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재명 대표 테러와 관련해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서라도 경찰과 더불어민주당은 허위사실에 대해 고발 운운할 것이 아니라, 보다 신속·정확히 관련 자료 배포 및 공개에 협조해 국민의 궁금증 해소(알권리 충족)에 나서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전청조 사건, 배우 이씨 사건에서는 알리지 말아야 할 사생활까지 무분별하게 보도한 언론이 정작 취재 수단을 최대 동원해 보도해야 할 사건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청개구리 같은 언론의 취재 형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언론이 바로 서야 언론 공개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사회 규범의 확립과 사회질서가 바로 잡힌다. 사회 부조리와 병폐를 막는 데는 언론의 역할이 크다. 제대로 된 언론, 살리는 언론이 인정받는 사회와 나라가 언론 종사자들이 지향해야 할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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