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세종대 교수

  옥스퍼드 시내는 걸어 다녀보았지만 넓은 초지가 펼쳐진 포트 메도우는 거주지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어도 제대로 걸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옥스퍼드 걷기 클럽에서 걷는 기회에 꼭 함께 걸어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드넓은 초지에서 소(Oxen)가 여울을 건너다(Ford)라는 의미에서 옥스퍼드라는 명칭이 유래한 곳이고 옥스퍼드에서 선사시대 이래 변화가 거의 없는 가장 오래된 기념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걷기 전날도 비가 많이 왔는데, 걷는 날 아침에도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면서 걸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주저하다가도 방수가 되는 외투도 있으니 그냥 걸어야겠다고 나서는데 날이 개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계속 비가 내려서 탬즈(River Thames)강변을 따라 걸어야 하는 오솔길 곳곳에 물이 흥건하였다. 쏟아진 비로 강물이 불어서 초지까지 올라와 보였고 유속도 매우 빨라서 거친 자연이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 이런 겨울날 강물에 들어가서 수영하는 사람 두 명을 보았다.

날이 갠 오후여서 그런지 군데 군데 물이 흥건한 오솔길에 걷기 클럽에서 나온 사람 이외에도 근처 지역 사람들이 나와서 걸었다. 70년대에 길이 정비되지 않아 비가 오면 진흙덩이 길을 철퍼덩 거리며 뛰어 다니다가 옷을 다 버려서 어머니한테 혼났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긴 장화를 신고 나와서 걷기도 했다. 비가 온다고 장화신고 흥건한 진흙 길을 걸어본 적이 언제인가? 지금 한국은 시골길도 정비가 잘되어서 이런 풍경을 만나기가 매우 어려운데, 이곳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이 초원은 10세기에 옥스퍼드 도시를 건설했던 알프레드 왕(King Alfred)이 당시 약탈을 일삼던 덴마크인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는데 도움을 준 대가로 옥스퍼드 프리맨(The Freemen)에게 준 120헥타르의 땅에 기초하였다. 옥스퍼드에서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는 계층의 프리맨의 초창기 명칭이 포트맨(Portman)이어서 포트 메도우(초원)라는 명칭이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리맨이 가축을 무상으로 방목할 수 있는 권리는 1086년 돔스데이 북(Domesday Book)에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돔스데이 북은 1086년 윌리엄 1세의 명령으로 영국과 웨일즈 지역 토지를 측량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영주에 대한 모든 토지 재산의 연간 가치와 그 가치의 원천이 된 토지, 노동력, 가축의 자원을 기록한 원고로 런던 국립 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1873년 현대 돔스데이라고 불리는 ‘토지 소유자의 귀환(Return of Owners of Land)’이 나올 때까지 영국에서 다시 시도되지 않은 것으로 이는 영국 내 토지 재산 분포에 대한 최초의 완전한 그림을 제시한 조사이다.

포트 메도우는 탬즈강변을 따라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 곳으로 각종 야생 조류 및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소나 토종 야생말이 거니는 풍경이 목가적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이곳이 매장지였고, 철기 시대에는 여름 동안 초원에 살면서 가축을 방목했는데 이런 역사적 유적지와 정착지가 보존되어 있다.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프리맨의 후예가 근처 농민과 이 지역을 공동 소유하면서 가축을 방목하거나 강에서 낚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한다.

17세기 영국 남북전쟁 당시 옥스퍼드는 왕당파가 도시 주변을 점령하고 요새를 건설하였다. 당시 옥스퍼드를 포위하기 위해 쌓은 구조물이 포트 메도우의 가장 낮은 부분에 남아 있어서 역사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이곳에서 인기 있는 사교 행사로 경마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는데, 드넓고 평평한 초원을 바라보면 절로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이 초원이 비행장으로 사용되는데, 영국 최초의 항공 사고가 이곳에서 발생하였고, 이에 대한 역사가 추모 명판에 기록되어 있다.

포트 메도우는 전통적인 영국 계급 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10세기 시작되어 사라진 역사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부지 할당식이 열렸던 1968년까지도 또 현재까지도 과거 전통의 그림자가 드리어져 있는 곳이다. 현재는 고고학 및 국제적으로 가치가 있는 식물과 무척추동물 군집을 보존하기 위해 초원이 보존되고 있다. 시대에 따른 홍수 변화를 고려하여 초원이 어떻게 구성되는 지를 통해 기후 변화를 확인하는 연구 실험실이기도 하다.

포트 메도우를 걸으면서 걸어야만 비로소 자세하게 보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옥스퍼드가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오는데도 비옷을 챙겨입고 드넓은 초원에 다시 나갔다. 오롯이 혼자서 초원이 설명하는 역사를 느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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