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칼럼니스트·공학박사

‘영국의 침공, 브리티시 인베이젼’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지금부터 60여 년 전인, 1964년 비틀즈라는 영국의 젊은 밴드가 미국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날이었다. ‘딱정벌레’를 연상하는 <비틀즈>는 영국 리버풀 출신인 4명의 젊은 청년들로 이후 ‘비틀매니어’를 형성하며 팝 뮤직사에 전설적인 인물로 등장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로큰롤의 왕이라 불리며 대중음악을 주도한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걸출한 가수가 있었다. 미국의 상징이기도 하며 모든 미국인이 사랑하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엘비스는 미국의 문화, 팝송, 미국 자부심의 대명사이자 자랑스러움이었다. 그런 미국 뉴욕 공항에 도착한 비틀즈를 반기는 것은 수만 명의 10대 팬들이었다.

아마도 기억으로 1970년도에 해제되었지만, 고교시절과 대학 신입생 즈음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빌보드를 휩쓸고 전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며 세계문화를 이끈 장본인이란 건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들이 내놓은 곡마다 크게 히트를 하며 전 세계 팝시장을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비틀즈는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와 철학적인 가사,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 등 다양한 예술적 장르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한두 가지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고 다채로운 음악을 실험적으로 융합하기도 한 장본인이었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달콤하게 따라 부르며 정서를 달래주던 <슈거 팝>의 착한(?)음악을 넘어 감상위주의 음악으로 새 장을 열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좋아하는 곡이 있었으니, 인생의 길고도 험한 여정을 노래한 ‘길고도 구부러진 길’이었다. 젊은 시절 힘겹고 어려울 때 비틀즈는 이 곡을 통해서 ‘많은 시간 혼자서 멈춰서 있고 울고 있는 자신을 위로하는, 그리고 수많은 방법으로 노력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그 길, 그 인생길’에 대한 애환을 잔잔한 음색으로 들려주곤 했다. 요즘 말로 ‘힐링’을 받으며 그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왔고, 이는 비틀즈가 위대한 수많은 이유 중 개인적인 감정이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비틀즈는 시처럼 아름다운 가사와 교훈으로 좌절과 아픔, 힘겨움에 처한 순간 늘 함께 한 가까운 벗이자 친구였다. 세월은 흘러 그들은 가고, 비틀즈를 떠오르게 하는 새롭고 강력한 팬덤이 생겨났다. BTS이다.

비틀즈 데뷔이후 약 50년 뒤인, 2013년 대한민국에서 한 보이밴드가 데뷔를 했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거인이 된다. 처음에는 다만 주목 받는 신인이나 혹은 중소 아이돌이라 불리는 보이그룹에 불과했다. 그러다 2017년 ‘Love yourself’ 시리즈부터 미국의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하며 서서히 그의 이름이 알려지며 덩달아 K-POP이라는 장르를 알리게 된다. 예전의 환경과 다르게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등장으로 그들은 동남아, 일본, 아메리카, 유럽 등으로 퍼져가며 인지도를 넓혔다. 그러다 다이너마이트라는 곡으로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 100에 1위곡으로 선정되며 BTS, 방탄 소년단의 등장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그들의 업적을 논하기에 이곳의 지면이 너무나 부족하다.

중소기획사의 기적, 그레미 어워드, 빌보드 싱글과 앨범챠트 동시 1위, 앨범 판매량 연간 1위 등의 파급효과 말고도 이들의 음악은 급속도로 세계로 퍼져갔고 길거리 곳곳에서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가 있게 되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에 가져다주는 경제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상과 문화, 한국에 대한 학습과 기부, 심리적 우호감, 친밀도 등 경제적 이익만으로 도저히 담아내지 못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특히나 이들은 4~ 50년 전 우리가 그러했듯이 힘겨움에 빠진 젊은이들의 애환을 그들의 음악으로 달래주고 있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도 총알을 막아내는 방탄, 10~20대 청소년들이 살아가면서 겪을 힘겨운 것들, 편견, 억압, 좌절을 막겠다는 의미라 한다.

독일 뮌헨, 베를린, 일본 도쿄 시부야, 미국 샌프란시스코, 프랑스 파리 등 길거리에서 K-POP랜덤 댄스라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스피커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이 무작위로 나오면 모여 있던 젊은이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 것인데, 언제 저 많은 춤들을 배워서 저렇게 나와서 추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예전 비틀즈의 음악을 부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바뀐 원조라고 했는데, BTS는 영상에서 안무를 보는 것에서 나와 함께 추는 것으로 바꾸어 놓은 원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의 음악적 특징은 함께 하는 동시대의 젊은이들과 청춘과 서정을 노래한다. BTS가 내놓은 용기와 격려의 메시지는 예전 비틀즈가 그랬던 것처럼 오랜 시간 대중들과 함께 할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살면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꾸만 위축되고 외로워짐을 느낀다. 예전 그 따스한 격려와 배려대신 외면과 피상적인 예우로 스스로의 위축감을 말년에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런 자랑스러운 젊은이들을 보면서 또한 우리 장년층에게도 위로를 받게 됨을 느낀다. 그래서 누가 아픈 말을 해도 그냥 씨익 웃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BTS는 방탄소년단이 아닌 방탄시니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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