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한국에서는 2024년도 대학입학전형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한국과 달리 가을학기부터 신학기가 시작되는 미국의 경우에는 지난 연말부터 3월경까지 입학허가서를 받게 된다. 물론 더 늦게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아 몇 달 더 기다려야 하지만 1차 허가는 대부분 3월 중 끝이 난다. 아들 둘이 미국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 대학에 진학시킨 경험이 있기에 필자도 학부모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자녀들 교육에 매진하고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애를 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초중등교육이 엄격한 커리큘럼과 교과서 중심으로, 강의 중심 수업이며, 4지선다형 문제풀이 등이 반복적으로 진행된다면, 미국의 초중등교육은 엄격한 커리큘럼은 같다고 보나, 강의와 토론이 혼합된 형태로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수업이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반화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초등 저학년 때에도 과제를 주어 학생들이 1~2주일 자료를 찾고 발표 및 토론하게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럴 수 있다고 보나, 경쟁이 심하다 보니 부모들이 도와주게 되고 글짓기든 공작이든 어른들의 경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받자’라고 한 말을 한국인들이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미국 초중등학교를 이야기 하는 게 아니고, 도심 슬럼지역 고교의 예를 들어 비교한 것이다.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 슬럼지역의 고교에서는 학생들의 퇴학율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감옥가고, 임신하고, 학습부진 등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많아 전 학년의 50~70%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1~2년 내의 적령기가 아니면 정규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으며, 학습지진아나 몇 년 휴학이나 퇴학 후 되돌아오는 경우, 특수학교에서 고교 졸업장을 받게 한다.

우리 한국의 교육은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서 학생들이 어느 정도 학력을 갖추고 대부분 졸업하기에 미국 슬럼지역의 중고교에서는 본받을 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교외지역 학군들은 중고교 학력수준이 뛰어나고, 대학진학도 잘 하며,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졸업생들이 많다. 일부 한국계 학생들이 고교시절 입시준비에 매진하여 좋은 대학에 가더라도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한국식 스파르타 교육으로 대학에 간 것이고 좋은 대학의 강의와 연구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 학생들은 좀 더 독립적으로 공부했고 성적이 좀 낮았어도 대학에 가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박사과정에서도 업적을 내는 이들이 많은 것이 그러한 까닭이라고 본다. 필자가 와있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에만 해도 많은 교포들이 살고 있고 각 고교에서 한국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뉴스를 여기저기서 듣는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모두들 어디로 갔는지 찾기 힘들다. 물론 2세 의사, 기업가, 변호사, 정치가 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석박사 후 대학 및 연구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백인 중심 사회에서의 편견과 차별도 원인이겠지만, 어린 시절 자신 스스로 공부하는 버릇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필자의 두 아들이 미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과 5학년까지 미국에서 다니고 있었는데, 큰 아들이 2학년때 과제가 ‘화산에 대한 연구발표’였고 각자 2~3주 정도에 걸쳐서 화산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모델까지 만들어 발표하는 것을 보았었다. 아이들도 혼자 리서치에 열심이었다. 그 후 두 아들은 필자의 귀국에 따라 한국학교로 전학왔었는데, 처음에는 언어도 서툴러서 시험성적이 50점 정도였지만 한 학기 지나며 대폭 올라가서 학년 평균 89점 정도를 맞게 되었다. 나중에는 거의 100점을 맞았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보면된다. 그런데 최종 성적이 수가 아닌 우가 나와서 좀 서운면도 있어서 담임선생님에게 여쭤보니 90점부터 수를 줬는데, 평균이 약간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2학기때는 95점을 다들 넘으니 당연히 수였고 성장 속도를 봐서 수를 주고 싶었는데, 학부형들 항의할까봐 못 줬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어려운 점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떤 교사는 말을 금방 못 알아 듣는다고 막대기로 이마를 탁 때리면서 ‘누가 미국 살다 오래’ 라는 말을 자주 했다는데, 아이들의 상처가 이만저만 아니고, 정말 한국 사회가 칭찬을 해주거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곳이 아님을 느끼는 안타까운 순간들이었다. 글짓기 대회를 하는데, 다들 부모들이 해준 것 같은 작품들이라서 의아했는데, 그 후 필자가 큰아들 것을 조금 고쳐 주었더니 한글 겨우 읽고 쓰는 애가 그 학교 장원을 하고 그 도시 전체 대회에도 보내져 입상하게 되었다. 둘째 아이도 글라이더 대회용 작품제작에 좀 도움을 주었더니 그것도 입상을 했었다. 물론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초중등교육도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잘은 모르겠다. 필자의 아이들은 5년 후 다시 미국으로 와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생물과학 및 기계공학 분야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혁신적인 대학들이 나타나고 기존 대학들도 많이 바뀌고 있어서 지금도 그때 아이들이 한국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어떻게 성장했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물론 아이들은 무척이나 적응하기 힘들었을 한국에서의 초중등교육을 부모로서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고 싶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