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몇 해 전, 유럽을 방문하여 이태리 나폴리 주변을 가는 중이었다. 배도 고프고 이태리 남부도시의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더 이상 이동하는 것을 방해했다. 주변에서 풍기는 짙은 오렌지 향과 파스타의 유혹에 가까운 어느 식당으로 향했다. 파스타와 피자, 그리고 얼마간의 올리브와 동료들의 따스한 미소, 이것만으로도 낮선 땅에서 이국의 정취를 느끼며 맛보는 훌륭한 식사가 되었을 것이다. 푸짐하게 나온 음식을 보며 모처럼 토마토 향이 가득한 파스타와 가벼운 와인을 곁들이며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의 풍경도 보고 싶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도 만나고 싶었다.

그윽한 오렌지 향기가 가득한 식당 어느 주방에서 접시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곧이어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른 것처럼 검정 수트의 건장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태리어로 대화를 하는 중이어서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실수로 접시를 깨트린 듯한 주위 상황을 통해 실수를 야단치는 것 같았다. 그 덩치 큰 지배인이 나무라던 사람은 작고 왜소한 체구의 할머니였다. 아마도 할머니가 실수로 그릇을 깨트렸고 그 덩치 큰 지배인은 잡아먹을 듯이 얼굴을 바짝 갖다 대며 침을 튀기며 고함을 질러댔다. 급기야 그 왜소한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대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고함을 질러대든지 식당 안에서도 식사를 즐기는 풍경의 평화는 이미 깨지고 없었다. 이내 곧 다시 찾아온 평화에 식사를 계속하며 그 할머니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초라하고 백발이 무성한 가여운 여인네는 아마도 작은 돈이나마 벌 수 밖에 없는 처지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윽고 그 할머니를 불러 물 한잔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다. 눈물을 훔치고 난 후 앞치마에 손을 닦고 그 할머니는 우리에게 다가와서 물 한 잔을 정중히 건넸다. 누구나 그리하듯이 의례히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팁을 주었다. 팁을 받고 난 후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50유로를 팁으로 드린 것이다.

우리 돈으로 하면, 약 7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그냥 주머니에 보니까 몇 장의 지폐가 있었고, 조금 과하다고 생각되었지만 팁이 아닌 할머니에게 용돈을 드려 위로하고 싶었다. 50유로를 받은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할머니께서 받으신 것은 50유로의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며 배려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접시를 실수로 떨어뜨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비지땀을 흘릴 정도로 야단을 맞는 것이 보기에 좋지만은 않았다. 잘못을 지적해도 정중하게 그 나이에 맞게 해 주었으면 더욱 더 좋았을텐데….

이제 식당을 나서 자동차 시동을 걸어 또다시 길을 재촉하며 나섰다. 그러자 차안에서 우리 일행들께서 모두 한 마디씩 건네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정박. 멋쟁이. 보는 내가 다 속이 후련했어. 그 동백기름 꽁지머리 그 지배인이 미워서 째려보기도 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대? 오늘 할머니께 드린 그 팁 50유로는 공금처리하기로 합시다. 하하하.” 차안에서는 이내 동료의식과 고마움이 전염되어 퍼져나가고 있었다. 길을 달려 아름답다고 유명한 나폴리 해안에 다가서며 크게 보이는 ‘산타루치아’ 호텔의 정경을 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차오’라며 우리에게 따스한 인사를 건넨다.

이 이야기는 몇 해 전, 이태리 출장길에 있었던 에피소드 이며 까맣게 잊고 지내던 사연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당시 함께 출장을 갔던 옛 선배님께서 연락이 되셨고, 그 이야기를 하며 지금도 호방하게 웃으셨다. 50유로를 건넸을 때 그 꽁지머리 지배인이 우리를 쳐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대며 우리 뒷모습을 쳐다보았다는 것이다. 우리네 전통사상 중에 경로사상이 있는지 모르는 듯 했다. 아니, 경로사상 보다는 우리 한국인들이 특히 많이 가지고 있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는 그 본성이 큰 것 같다. 굳이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어려운 사람을 돕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족이 우리가 아닌가 생각했다.

선배님과 모처럼 반갑게 통화를 하면서 그 때 지불한 50유로의 가치가 이렇게 오랫동안 향기를 품으며 아직 남아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가끔은 따스한 낮선 땅에서 이국의 정취를 느끼며 맛보는 훌륭한 식사가 그립다. 그날 맛 본 토마토 향이 가득한 파스타와 가벼운 와인, 그리고 올리브 함께 웃고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주위를 떠나고 없다. 지금도 가끔은 식사 후 회사 뒤 음지에서 조용한 공장 뒤를 산책하며 그 시절 그리웠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사실 그 때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나폴리라는 세계 3대 미항도, 그리고 따스하고 아름다웠던 지중해의 햇살도 아닌 우리 동료의 배려와 웃음소리였다.

지금은 어디에 가서 다시 그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는지, 또 다시 먼 출장길에 동행해서 누구 한 명이 저지른 호기에 대해 공감해주며 칭찬하고 동참해 줄 수 있는 지 그 때 그 사람들, 그 시절이 참으로 부럽고 그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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