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4·10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저출생 극복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결혼·출산 적령기 세대에서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팽배하다. 배우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현재 시행되는 제도도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도를 설계하고 집행하는 공무원들조차 그 예외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2022년 국가 및 지방 공무원의 육아휴직 사용자는 총 5만9천758명이었는데 여성이 4만5천247명으로 75.7%, 남성이 1만4천511명으로 24.3%를 각각 차지했다. 육아휴직 사용률에서도 남녀 공무원의 격차는 컸다. 특히 국가공무원의 경우 육아휴직 대상자(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공무원) 중 여성 공무원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37%였지만, 남성 공무원은 10.6%에 불과했다. 이는 이웃나라 일본의 남성 공무원 육아휴직 사용률(72.5%)과 비교해도 크게 낮은 수치다. 광역 지자체 및 기관별 편차도 컸다. 50개 중앙행정기관 중 육아휴직 사용률이 가장 높은 기관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 55.6%였고, 가장 사용률이 낮은 기관은 23명 중 1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4.3%)였다.

이런 통계는 육아휴직을 쓰는 데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공직사회도 육아와 돌봄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편견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또 여성 공무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을수록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고 남성 비율이 높거나 위계질서 중시 등 권위주의 문화가 강한 부처나 지역일수록 육아휴직 사용률이 낮은 것으로 비칠 수 있는 흐름도 보여줬다. 공무원들도 육아휴직을 마음 편하게 쓰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국가가 일반 기업을 향해 저출생 극복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려면 우선 정부가 공직사회의 육아 문화 개선에 힘쓰며 관련 제도 정착에 나서는 노력을 펴는 게 정상일 것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저출생 대책 공약을 나란히 발표했는데, 육아휴직 자동 개시와 휴직시 급여 보장 등 육아휴직 확대가 공통분모를 이뤘다. 그러나 아무리 뜻이 좋더라도 여야 합의와 입법, 이후 의무 시행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일회성 선거용 이벤트일 뿐이다. 여야는 이번 계기에 기존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기 바란다. 회사 눈치 보이고 불이익을 받을까 봐 배우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을 제대로 쓰지 않는 직장인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인구재앙을 이겨내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을 향해 희생을 요구하기 전에 자신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육아 문제와 관련한 공무원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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