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지난 주말 문상을 위해 포항에 다녀왔다. 토요일 오전에 모처럼 침대에서 뒹굴 거리다가 전화로 연락을 받고는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했다.

먼저 장거리 운전을 위해 날씨를 확인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켜니 폭설이 와서 청소년 동계올림픽에 차질이 예상된다는 뉴스가 바로 뜬다. 순간적으로 오늘 운전을 하는데 고생을 하겠구나 생각을 했다.
그래서 차를 두고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확인하해 보니 폭설은 강원도를 비롯한 북쪽지역의 이야기다. 다행히 대구를 비롯한 남부지역은 눈이 아니라 비가 온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지역에 따라 기후에 차이가 제법 나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가 나름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하나의 국가인데 손바닥만한 면적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비오는 도로에서의 운전도 쉽지만은 않았다. 고속도로 전광판에 길이 미끄러우니 최고 속도를 시속 100km에서 시속 80km로 줄이라는 안내가 수시로 뜬다. 물론 그렇더라도 눈 속을 운전하는 것 보다는 쉽기 때문에 과속을 하지 않고 조심해서 운전하니 별 어려움 없이 잘 다녀오긴 했다.

운전을 하면서 생각을 했다. 아직까지 나는 겨울에 눈이 아니라 비가 많이 온다는 사실이 익숙하지는 않다. 봄이나 여름비와 달리 겨울비는 쓸쓸한 느낌도 준다. 운전할 때뿐만 아니라 걸을 때도 겨울비를 맞으면 처량하게 느껴진다. 눈 오는 길의 낭만 같은 것도 없다.
게다가 체감 추위는 오히려 더 크게 느껴진다. 눈이 내릴 때는 당연히 기온이 낮겠지만 오히려 포근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비가 올 때는 그런 게 없기 때문이다. 액체상태의 비가 내리다 보니 옷 속으로 습기도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한편 생각해 보니 올해는 제대로 눈 구경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원래 눈이 많이 안 오는 지역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겨울철마다 두세번 정도의 눈 구경을 했던 것 같은데 올 겨울에는 아직 눈이 내렸다는 기억이 없다. 약한 눈이 내린 때가 있었지만 마침 그때는 내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얼마 전 우리 동네에는 비가 왔지만 고지대는 눈이 왔는지 먼발치서 산꼭대기가 희끗희끗한 것을 보긴 했지만 금방 녹았다.

대신 비는 많이 왔다. 겨울답지 않게 강수량도 많았다. 지난 연말에 비가 많이 왔을 때 금호강이 범람한 것도 보았다. 이런 비가 눈으로 내렸다면 그야말로 폭설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겨울철에 익숙하지 않는 풍경이다.

아마도 기후온난화 때문인가 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비로 변하는 것은 날씨가 비교적 포근했기 때문이다. 벌써 절반 이상이 지나간 이번 겨울은 전체적으로는 따뜻한 편이었다. 가장 춥다는 대한이나 소한에도 별로 춥지 않게 보냈다. 북극의 찬바람이 내려와 아주 추웠을 때도 있었지만 이런 추운 날을 피해서 비가 온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다음날에는 시내의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창문을 통해 거리를 보니 비가 그친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무척 쓸쓸해 보인다. 분위기를 보니 잔득 흐린 잿빛 하늘과 어울려 역시 잿빛 콘크리트 건물들이 을씨년스러운 황량함을 연출하고 있다. 흰 눈이 내린 거리를 걷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차를 마시는 기분도 그리 좋지만도 않았다. 차라리 비가 흗날리는 풍경이라도 보면서 차를 마시면 시적 감상이라도 떠오르겠지만 이건 뭐 전혀 그런 운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좋은 분위기를 얻으려고 눈이 내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눈이 내릴 때 당장은 기분이 좋을지는 몰라도 교통사고가 많이 나고 또한 눈을 치우거나 눈이 녹은 뒤의 지저분한 거리를 청소하느라 애를 먹기 때문이다. 이런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는 듯하다.

다행히 겨울에 많이 내린 비로 올봄의 농사를 지을 저수지의 물은 충분하다고 한다. 아울러 봄철의 산불 걱정도 조금 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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