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근로자 5~49명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예정대로 27일 시행될 공산이 커졌다. 이를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마지노선인 25일 본회의에서 처리돼야 하지만 여야 이견으로 사실상 물 건너간 데 따른 것이다. 83만여 중소·영세기업은 준비가 덜 돼 폐업, 도산, 해고의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사망 사고를 계기로 제정된 이 법은 2022년 1월 27일 50인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 금액 50억원 이상)부터 적용됐고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간 유예한 뒤 시행하기로 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애초 대상에서 빠졌다. 노동자 사망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중소기업계는 법 시행에 무방비 상태라고 하소연한다. 경총이 작년 말 1053곳을 실태 조사했더니 적용 시한까지 이행이 어렵다는 기업이 87%였다. 이유로 '전문인력이 없어서'(41%), '의무 내용이 너무 많아서'(23%) 등을 꼽았다. 정부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적이 없다는 기업도 10곳 중 8곳(82%)이었다. 인건비 부담과 인력난 등 여건이 열악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기업들이 법 시행을 앞두고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관행을 끊어내려 나름대로 노력해왔는지, 정부는 중소·영세 기업들의 준비 상황을 체크하면서 미비·보완점을 찾아 안착할 수 있게 지원해왔는지 의문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업무상 질병이 아닌 산재 사고 사망자 874명 중 707명(80.9%)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

물론 일차적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업계 주장대로 기업 특성과 규모 등 현장 수용성과 실효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법이 제정됐고 시행 확대에 따른 문제점이 예견됐다면, 또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가혹해 산재 예방이라는 법 제정 취지마저 무색해졌다면 관련 논의를 거쳐 적용 대상 등 법·규정이나 조항을 걸맞게 손질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에 대한 진지한 협의 없이 시행 시기가 임박하자 네 탓 공방이다. 정부·여당은 범법자 양산, 기업 줄도산, 노동자 대량 해고 등 부작용에 대한 목소리만 높이고 있고, 거대 야당도 산업재해안전청 신설 등 여러 선결 조건을 내걸어 협의를 어렵게 해놓고는 "중소기업 불안을 증폭시키는 공포 마케팅"이라고 지적한다.

법이 시행된 뒤라도 정치권은 현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합리하거나 비합리적인 조항이 있는지 직접 살피고 의견을 들어 법 규정을 재정비하길 바란다. 정부도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 목적인만큼 취약 분야나 기업을 찾아 기술과 시설을 지원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와 같은 재해 예방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제도가 안착할 수 있게 진력해야 한다. 우리나라 산재사고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아 '산재 공화국'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도 노동자 안전을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투자해야 한다. "법을 지키다가는 범법자가 되거나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불만은 시대착오적이다. 노동자들 역시 관련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