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국민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한 반에 60명이 넘는 또래 친구들이 있었다. 그것도 반이 모자라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서 수업을 진행했다. 앞가슴에 흰 손수건을 커다랗게 달고 입학하던 또래의 모습들. 아침 조회시간 교장선생님의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연설로 인해 꼭 전교에서 한두 명씩은 빈혈로 친구들이 힘없이 쓰러지기도 하던 시절. 배고프고 먹을 것이 부족해서 늘 얼굴에 마른버짐이라는 피부건선이 있기가 일쑤였다. 겨울철은 추워도 너무 추었고,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다. 아마도 라디오라는 매체가 지금의 인터넷, OTT 플랫폼 서비스 등과 비교할 때 가장 각광 받는 매체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과는 다르게 초중고 과정의 학교에서는 국기의례라든지 교련 등 집단의식과 충성심, 효도를 기초로 대승적인 사고도 배웠다. 나라를 부강하게 해야 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나라를 지키는 국본사상을 무의식중에 배워 익히도록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마도 우리세대는 나라를 우선적으로 걱정하고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에게 뭐라도 물려 줄 걱정을 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우리에겐 그런 시절이 있었다. TV대신 집집마다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들었고, 그 힘든 가운데서 세상에 대해 담대하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도전을 하던 세월이 있었다. 지금은 한참 전에 들었지만, 가끔씩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불 속에서 잠들기 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노래 소리. 그 가사를 다시 보니 우리의 옛 생각이 서서히 떠오른다.

"옛날에 어느 선술집이 하나 있었어. 우린 거기서 두어 잔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우리가 얼마나 많이 웃으면서 그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나? 우린 앞으로 거창한 일을 하며 살겠다고 기염을 토하며 함께 술 잔 기울였어. 그리고는 바쁜 세월은 정신없이 흘러갔지. 우리의 빛나던 별빛 같은 신념은 세월 속에 다 잃어버렸고, 어쩌다 우연히 그 술집에서 다시 널 보게 된다면 서로 웃음 지으며 이렇게 말할 거야. 그 때 그 시절이 좋았어. 친구야. 우린 그런 날이 영원할 줄 알았어. 끝없이 노래하고 춤출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했던 거지. 우리가 택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인생을 살아가며 싸우리라 그리고 지지 않으리라 그리 생각했어. 우린 젊으니 자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거야.

바로 오늘 저녁 그 술집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어. 근데 아무 것도 예전 같지 않았어. 술집 유리문에 비친 낯선 모습을 보았거든? 그 외로운 여인이 정말 나일까? 익숙한 웃음소리가 문틈을 통해 흘러나왔는데 네 얼굴이 보이고,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어. 친구야. 우린 나이를 먹어 늙었어도 아직 철은 덜 들었나봐. 아직 가슴 속에는 그 꿈들이 여전히 그대로이니까 말이야. 그 시절이 좋았어. 친구야. 인생을 살아가며 싸우리라 그리고 지지 않으리라 그리 생각했어.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 믿었어.“누구나 한 번 듣게 되면 금방 추억에 잠기는 메리 홉킨의 ‘그 시절이 좋았어(Those were the days) 라는 곡이다. 우연히 지나치다 보게 된 이 짧은 영상에 갑자기 눈물이 맺어질 만큼 반가움과 고마움이 묻어있었다.

오랜 옛날 기억도 희미한 시절, 듣기만 해도 친구들과 좋았던 그 시절의 추억들. 그 기억의 편린(片鱗)들이 바람처럼 스쳐지나갈 때, 가슴 속은 뻥 뚫려 먹먹함으로 남는다. 그 때 그 시절, 지금은 다들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 할머니로 살아가고 있는 옛 벗들이 그리워지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이런 음악을 들으며 평생을 지내왔구나, 짧은 시간이지만 잊고 지냈구나. 세월이 지나다보니 그 고마움을 잊고 살았구나. 이런 아름다움과 함께 평생을 하게 되어 너무 고마운 세월이구나. 흰 교복차림으로 다소곳이 길을 걷던 친구들의 재잘거림이 이제는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모습이 되어서 오래 전 모습으로 회상하게 되었다.

버스 토큰과 회수권을 사용하며 살았고, 전쟁 후 세대인 만큼 인구수가 많아서 예비고사나 본고사, 논술고사로 치열하게 경쟁하며 대학입시를 위해 재수, 삼수라는 것이 일상이었던 세대. 웃돈을 주고 개통했던 백색 전화기의 위엄을 모토롤라, 삐삐, 시티폰,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며 적응해야만 했던 지금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들.

'콩나물시루' 버스라는 단어가 생길만큼 많은 인구 때문에 매사 회사와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과로사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냈던 세대. 무한 경쟁을 했고, 국가를 일으켜 세우고 가난을 벗어난 제조업 기반 사고체제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전대미문의 가상의 세상, 정보통신 기반 세상을 맞이하는 우리네들.

그렇지만 그 때 그 시절에 우리에게는 따뜻한 정이 있었습니다. 눈부시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겉은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속은 한없이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사는 세대, 이제 노인이 되어 은퇴를 하였거나 진행되는 세대들. 이제 은막 뒤로 사라질 이들에 대해 고마웠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래도 그 때 그 시절이 좋았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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