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니카 수필가

유리문 / 곽향련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가 훤히 보이는데 막막하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휠체어를 탄 엄마는 안, 나는 바깥



아니다, 이미 생이 저쪽 끝으로 밀려난 엄마는

내가 서 있는 바깥을 안쪽이라 할 것이고

당신은 바깥이라 할 것이다



사라지기 위해 멈추고 있는 사람들

유리 안은 선팅을 한 것처럼 그늘지고 어둡다

여러 손자국이 다녀간 유리에 엄마와 나의 손을 대 본다

차갑고 투명한 슬픔이 손바닥에 닿는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입속에서 우물우물

틀니를 뺀 엄마의 볼은 우물을 파 놓은 듯 깊은 물소리가 났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염되는 눈물은 코로나19보다 전염성이 강해 줄줄 샌다



흰 가운 입은 천사표 저승사자가 면회 시간 끝났음을 알리고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은 유리 조각처럼 깨져서 간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늘 따뜻하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다사로운 손길을 가졌다. 어머니의 삼시 세끼 차려주시는 밥상, 이 세상에서 가장 맛깔스러운 어머니의 손맛이었다. 어머니의 언어는 누구보다도 큰 위로의 단어들이었으며 어머니와 함께 있는 곳은 늘 빛이 나는 곳이었다. 어머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격려였으며 위안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강했다.

그렇게 강한 어머니였는데 ‘유리를 사이에 두고 휠체어를 탄 엄마는 안, 나는 바깥’에서 어머니의 연약한 모습을 유리문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인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러기에 더 ‘차갑고 투명한 슬픔’이 스며든다. 아픈 어머니를 코로나로 인해 가까이 가서 안아 보지도 못하고 ‘유리문’ 밖에서 돌아서는 시인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염되는 눈물’이 ‘줄줄 샌다’고 했다.

세상은 투명한 ‘유리문’ 하나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결별시키고 세상의 ‘안과 바깥’으로 격리시키는 힘이 있음에 놀란다. 시인의 슬픔이 소리 없이 방울져 내리는 것을 다가가 닦아주고 싶다.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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