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3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 윤석열 정부가 불러온 국정 위기를 극복해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게임의 룰인 선거제 개편을 놓고는 "신중하게 의견 수렴 중"이라며 "길지 않은 시간 내에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고 대화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이 70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원내 1당이자 제1야당의 대표가 아직도 선거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국민의힘은 그나마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자는 안이라도 제시했으나, 민주당은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며 당론을 미루는 형국이다. 총선 일정상 더는 미룰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이는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이러는 사이 향후 선거제 개편 시나리오를 겨냥해 탈당과 제3지대 이합집산, 위성정당 창당 움직임이 어지럽게 이어지며 총선판이 무질서 그 자체가 되고 있다.

선거제를 둘러싼 민주당과 이 대표의 최근 행태는 한마디로 갈팡질팡이다. 당초 위성정당이 없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게 이 대표다. 그러나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난해 11월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갑자기 병립형 회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범야권 내에서는 준연동형을 고수해야 한다며 즉각 반발했고, 소속 의원의 절반가량인 80명도 "악수 중의 악수"라고 가세했다. 압박을 느낀 이 대표는 준연동형제 유지를 검토하는 듯했으나 머지않아 다시 기류가 변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시한 제3의 안인 '권역별 병립형'을 띄우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병립형 회귀 아니냐는 비판론이 대두되자 지도부는 또다시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친명계의 정청래 최고위원이 '전 당원 투표'를 제안하며 군불때기를 시도하고 있으나 당내 분열상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민주당과 이 대표가 갈피를 못 잡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득실 계산 때문이다. 명분상으로는 당초 공약했던 준연동형을 유지해야 하지만, 의석수라는 실리를 따져보면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제3지대 신당의 파급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민주당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달성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주당과 이 대표는 선거제 개편 논의가 왜 시작됐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4년 전 소수정당 배려를 명분으로 준연동형제를 밀어붙인 게 민주당이다. 그러나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자 이를 꼼수라고 비판하더니 결국 전 당원 투표에 부쳐 위성정당 참여를 결정했다. 스스로 원칙과 명분을 허물어뜨리면서 제도 자체를 희화화한 정치 도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위성정당의 난립을 막으면서 소수정당도 배려해주는 해법을 민주당이 찾아야 한다.

선거제는 단순히 게임의 룰이란 차원을 넘어 우리 정치가 나아갈 방향과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제도적 틀이다. 원칙과 명분이 바로 서야 한다. 특정 정당의 당리당략에 볼모가 되는 일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거대 양당이 기득권 나눠먹기식으로 야합하거나 또다시 꼼수를 부릴 여지를 허용하는 것은 유권자들을 우롱하는 행위다. 총선 유불리만 떠난다면 위성정당 난립 방지와 소수정당 배려라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안을 마련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민주당은 최대한 서둘러 당론을 확정하고 여당과의 협상에 나서길 바란다. 더 이상 좌고우면한다면 과연 유권자를 안중에 두고 있는 제1야당이 맞는지, 총선 표심이 되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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