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숙 화백(사진 왼쪽)

   
▲ 김정숙 작 \\\'여인군상\\\'

 포항시립미술관은 갑진년 문을 여는 기획 전시로 지역의 원로작가 김정숙의 ‘나의 에세이’전을 1월 23일부터 5월 12일까지 개최한다.

포항시립미술관은 우리 지역에서 묵묵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를 연구하여 그 예술세계를 되돌아보고 지역 미술사 정립 및 작가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지역원로작가전을 개최하고 있다.

지역원로작가전 김정숙 '나의 에세이'는 여성으로서 대학 진학조차 어려웠던 시절, 포항에서 그림을 시작하여 지역 여성 화가로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김정숙의 삶과 조형세계를 조망한다. 작가는 시대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작품에 진솔한 이야기와 내밀한 감정을 녹여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끌어낸다. 특히 유년 시절 특별한 추억을 간직한 보경사 인근에서 고향을 지키며, 마을 어귀에 항상 서 있는 당산목처럼 김정숙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옛 기억을 토양 삼아 눈과 마음에 새겨진 고향의 향기에 집중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일궈왔다. 이번 전시는 김정숙 화백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김정숙은 1950년 포항에서 태어나 1972년 상명여자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중학교 미술 교사를 역임하고 1982년 포항에 정착한다. 10여 년간 포항예술고등학교와 선린전문대학 산업디자인과에 출강해 지역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1986년 문예공간에서의 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업 활동에 매진하게 된다. 1990년 아솜터화랑, 93년과 96년 시민갤러리, 99년 포항 대백갤러리 2007년 포스코갤러리 등 포항의 전시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김정숙은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가 일본을 다녀오시면서 사온 화구박스를 들고 수도산, 보경사, 송도해수욕장을 자유롭게 누비며, 푸르른 녹음과 찬란하게 반짝이는 윤슬, 짠내 가득한 바다내음, 보경사의 절경, 내연산 12폭포와 계곡의 물소리를 벗 삼아 학창 시절을 보냈다. 김정숙은 그렇게 제대로 된 미술교육 받지 않고 자연을 스승 삼아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의 권유로 고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올라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다. 당시 상명여자사범대학교 교수였던 박득순(1910-1990)의 화실에서 그림의 기초를 익히며 6년간 문하생으로 대학 생활을 보낸다. 그의 유일한 스승이었던 박득순은 인물화를 회화의 기본으로 삼았던 작가로 인체를 다각적으로 데생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훈련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다. 이러한 가르침 속에서 그녀를 매료시킨 것은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처음 접한 인체 크로키였다. 순간적인 감성과 집중력으로 대상의 동세와 느낌을 표현하고 내재된 에너지와 정제되지 않은 솔직한 감정을 한 장의 종이에 담아내기 시작한다. 크로키는 김정숙 작업의 주된 표현 방법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우리들의 이야기
김정숙에게 인체를 연구하는 것은 미술의 기본기 훈련이자 아름다움과 잠재된 미적 세계를 구현해 내는 주요한 수단으로써 사용되어 왔다. 자신을 성찰하고 자아의 발전과 작품 완성의 내적 성숙을 위해 쉬지 않고 인체 누드 크로키를 15년간 이어오고 있다. ‘우리들의 이야기’ 시리즈는 김정숙 작품 활동의 시작점이자 여성의 몸짓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과 기운의 흐름을 통해 여인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김정숙이 캔버스에 표현한 몸짓 언어는 여성의 움직임, 자세, 표정을 포함한 배경에 묘사된 꽃과 나비의 움직임까지 내포한다. 김정숙은 세부묘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이미지와 인상을 중시하며 회화의 속성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인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누드와 달리 여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 감정, 교감, 서사, 공감의 기제로 여성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 인도·네팔 여행기
김정숙의 화업은 2003년 인도·네팔 여행을 통해 전환기를 맞이한다. 김정숙의 첫 인도행은 인도·네팔 불교 성지순례를 떠나는 비구니 스님들과 함께였다. 그들과 함께 마음을 정화하며 깨달음을 향한 숭고한 여정을 나누었다. 캔버스와 화구통을 둘러메고 한 달 정도 머무르며 새로운 환경, 문화, 종교, 언어를 경험했다. 여섯 번의 인도행, 네팔 안나푸르나 트래킹, 포카라에서 바라본 설산의 히말라야, 평생 잊을 수 없는 바라나시 갠지스 강, 아잔타 석굴 가는 길에 만난 염소 여인, 어린아이를 안고 맨발로 거리를 배회하는 여인, 부다가야 가는 길에 만난 사과 파는 여인 등 스쳐 지나간 모든 것이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김정숙은 여행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그곳에서 느낀 신비롭고 장엄한 자연, 맑고 순수한 사람들의 눈빛 등 그때 받은 감동을 하나도 빠짐없이 화폭에 담아내려 작품에 몰두했다.

◇ 보경사 이주 이후
2013년 김정숙은 꿈에 그리던 자기만의 갤러리를 갖게 된다. 오래된 추억과 향수가 남아있는 보경사 인근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그리고 싶은 나무와 꽃으로 정원을 가꾸었다. 이 풍경들은 자연스레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 더불어 그녀의 꽃 그림 배경에는 바다와 등대가 항상 등장한다. 작가에게 바다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친구다. 마음이 허전했던 시기 시간만 나면 바닷가로 달려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를 바라보고 느끼며 그 자리에서 바다 풍광을 담아냈다.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작가는 인생의 순환을 느끼고 교감하며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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