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60년 70년대를 살아온 남자들, 우리 때 모든 남자들은 마음 속 은밀한 로망이 하나씩 있다. 그것은 아마도 개인 영화관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아닐까? 오래 전, 전자회사에서는 이런 트렌드를 읽고 홈시어터라는 것을 출시하였지만 그것은 또 다른 DVD 플레이어에 불과했다. 집안에 영화관을 만든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어서 그저 마음속으로만 꾸는 꿈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얼마 전 어렵지 않게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큰 맘 먹고 <프로젝트>라는 영상 확대 장치를 샀다. 대형TV로 바꾸자고 요청했지만, 큰 영상이 왜 필요하냐며 힐난만 받고 우연히 프로젝트를 구매하게 되었다. 대형 TV보다 더 큰 영상인데 화질도 무척 좋다.

내친 김에 영상을 연결했지만 가진 영상이 오래 된 고전 명화 뿐, 최신 영화는 별로 있는 것이 없었다. 사실은, 고전 명화는 잘 보지 않다보니 영화감상과 음악 감상 이라는 취미가 없어져 버렸다. 최근의 재미난 영화를 보기 위해서보다 고전영화를 보면서 아름다웠던 당시의 추억이나 그 정서, 느낌이 지금의 감정과 뒤섞여버려 고왔던 기억이 훼손될까봐 가급적 보지 않는다.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고 은퇴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소일거리를 찾을 때 그때는 옛날을 추억하며 보리라 늘 미뤄만 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장치도 구매한 터인지라 어쩔 수 없이 흰색 걸개의 대형 스크린에 어네스트 헤밍웨이 원작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띄워서 혼자 허락된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첫 장면이 시작되면서부터 눈물이 울컥했다. 아날로그 형식의 음악과 선명하지 못하고 낡은 화면, 얼굴에 분칠을 짙게 한 배우들의 모습. 디지털과 최고급 사양의 촬영장비, 프로그램으로 구현된 지금의 화면과 구도, 배우들의 모습, 음악, 연출들과는 너무나 판이하고 답답해 보이는 화면 구성을 보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깨끗함이 그리고 화려하고 반짝임만이 좋은 것은 아니리라. 가로등, 병원, 전장, 다소 우수적인 화면이 나오면서 감성을 이미 충족시켰다. 한 참 영화에 빠져있으면서 문득 예전이 지금보다 살기에는 더 좋았겠다. 는 생각을 했다. 누구를 만나기 위해 시계탑 앞에서 한없이 기다리던 시절, 현실에서는 스마트폰으로 기다림의 안타까움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모든 것이 다 거미줄처럼 연결이 되어있어, 이제는 지구촌이 마치 옆 동네처럼 느껴지고 모든 나라가 특색 없이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몇 차례 유럽이나 다른 나라를 가 봐도 큰 구분이 없다. 음식도 전 세계인들이 동일한 맛을 내는 조미료를 사용하고 즐기며 특유의 맛과 멋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그 영화 속 풍경이 왜 이렇게 부럽게 느껴지고 그립고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고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참기가 어려운 것은 지금 세상은 인공지능(AI)의 광풍이 불고 있다. Open AI에서 개발한 자연어를 처리하는 딥 러닝 모델 GPT는 가히 혁명적이다. 너무나 빨리 돌아가는 세상, 당시 수명주기가 6개월이라던 전자시대보다 더 빠르고 눈코 뜰 새가 없다.

우리 때는 많이 부족하고 없어도 낭만과 행복, 멋이 있었지만 요즘은 없는 것 같아서 문명 속에 사는 아이들이 오히려 불쌍하다. 스필버그의 영화 인공지능과 프로그램의 세상에서 인간 같은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로봇소년의 이야기도, 로봇세상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인공지능로봇에 관한 이야기도, 인공지능인 <스카이 넷>과 인간을 토벌하기 위해 타임 트래블을 이용해 사람을 추격하고 제거하는 <터미네이터>도 모두 AI와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서 윤리적 고민 기술적 위협을 다루고 있다. AI가 모든 답을 제공하는 편리함 대신, 이것이 이미 우리들 앞으로 성큼 다가와 버렸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나는 공학도로서 이런 문명의 이기를 더욱 공부하고 계승, 발전시켜 후손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향 탓인지 썩 마음이 좋지는 못하다. 예전 대학 강단에서 늘 첫 교시 오리엔테이션 시간, 공학도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직업윤리와 공학도가 해서는 안 될 거짓과 엔지니어의 양심을 강의했다. 침몰하는 배에 아이들을 두고 제일 먼저 도망간 세월호 선장과 멀쩡한 백화점이 무너지도록 안전을 도외시한 자들의 직업윤리를 비난했다. 수많은 기계 장치를 다루며 정직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사람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이야기를 윤리와 함께 해 왔는데, 이제는 지능화된 기계의 분야와 영역도 포함시켜야 될지 인공지능을 반기기만 하는 쪽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립다. 영상 속의 그 시절이, 그리고 그 정경이, 그 풍경이... 그 사람들이 참으로 그립다. 이제는 해외여행을 떠나도 소용이 없다. 모두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사용하고 음식에 들어가는 조미료가 동일하고,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누구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풍경밖에 없다. '무기여 잘 있거라' 헤밍웨이의 영화 속 그곳으로 가려면 이제는 타임머신을 타는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문명이여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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