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니카 수필가

대나무 숲길을 거니는데 아버지가 대쪽같이 서 있다

곧은 자세로 키 크고 마른 아버지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대나무집을 지었다
앉으나 서나 허리 한번 굽히지 않았다
바둑을 즐기셨던 아버지
집 짓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어허 이런! 어허 이런! 손으로 무릎을 탁탁 내리쳤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무릎에는 마디가 한 뼘씩 자랐다
하얗고 까만 바둑알로 들어앉은 나의 작은 눈
왕국 짓는 일을 보느라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렸다
그런 아버지의 집 짓는 일에도 바람에 대숲 흔들리듯 일렁였다
아직 마디가 다 자라지 않은 오빠들과 나의 종아리에
대나무 자국을 남기고
빨간 종아리들이 잠들었을 무렵
멍 자국을 몰래 쓸어 주셨던 밤
나는 잠든 척 숨소리를 죽였다
아버지는 속을 비워 나갔고 허한 마디를 놓아 버리자
뿌리 뽑힌 대나무처럼 쓰러졌다

대나무 숲에는 깡마른 아버지들이 흔들리고 있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말이 없으신 아버지셨다. 일만 줄곧 하시느라 ‘허리 한번 굽히지 않은’ 그렇게 사시다가‘뿌리 뽑힌 대나무처럼 쓰러진’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에서 통증이 밀려든다. 그 통증은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 편히 쉬어보시지 못하셨을 아버지의 야윈 모습이, 아버지의 말없으심이, 일만 하시는 모습이, 어린 날 잘못해서 맞았던 회초리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곳에서, 밀려드는 아픔 일 수 있을 것이다. ‘멍 자국을 몰래 쓸어’ 주시던 다정하신 아버지였는데…그 깊은 속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이젠 뵐 수도 없는 곳에서 내려다 보고 계실 ‘곧은 자세로 키 크고 마른 아버지’는 ‘대쪽같이’ 서 계시는 것 같은데 말이다. 아버지의 외형에서도 자신의 내면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이 숨겨져 있기에 더 애틋해진 마음으로‘태화강 대나무 숲길을 거닐며’ 회상에 젖는다.

‘대나무숲’이 바람에 젖은 소리를 낼 때마다 속울음으로 흔들리고 계실 아버지… 태화강 대나무 숲길은 늘 그렇게 그리움이 흩날리는 곳이다.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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