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설날이 다가온다. 올해 설날은 그리 빠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는 적당한 시기인 것 같다. 이 기준은 양력 1월 1일인 신정과 비교한 것이다.
설날이 다가올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양력 1월 1일인 신정이 많은 제도나 일정이 바뀌는 기준일이 되는 것처럼 설날도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는 기준이 되는 경우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한 해의 일들을 추진할 때 양력으로 연말인 12월 31일을 기준으로 마무리 하고 신년인 1월 1일을 기준으로 시작하는 것이 관행이다. 연말연시를 기준으로 예산이나 사업 등이 바뀌게 된다. 그러나 역시 새로운 해가 된다는 의미의 설날인데 이날을 기준으로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루만 쉬는 1월 1일에 비해 설날은 3일 연휴이다. 다른 주말이 겹치면 4~5일간 휴가를 얻는 셈이다. 새로운 일은 오히려 설날 이후에 시작하는 것이 더 폼이 날 것도 같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밥상머리 여론전을 펼쳐야 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중요한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실제로 해가 바뀌는 1월 1일 신년은 명절로 인정되지 않는다. 휴가도 하루 뿐이다. 그래서 시간이 빠듯한 경우도 있다. 해맞이를 다녀오거나 하면 다음날 출근하려면 무척 피곤한 경험도 많을 것이다.

설날이 긴 휴일이 된 것은 추석과 더불어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양력의 신정이 3일 연휴였는데 설날이 3일 연휴가 되면서 하류 휴일로 바뀌었다. 구정이 신정을 이긴 것이라는 표현을 읽은 기억이 있다.
설날이나 추석은 음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특징이다.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대부분 생일이 음력이다. 태어날 때는 양력보다 음력이 정서상 더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달력이 귀한 시절에 잘 알 수 없는 양력의 날짜보다 직접 눈에 보이는 달의 위상 변화로 표시하는 음력이 달력으로서 효과가 컸기 때문일 것도 같다.

여러 제도나 사업 시기가 구분이 1월 1일을 기준으로 변하는 것이 보편적이긴 하지만 일부는 다른 날이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일부 기관에서는 회계연도를 1월 1일이 아닌 다른 날을 기준으로 하기도 한다. 학교는 3월 1일을 기준으로 새로운 학년도가 시작된다. 미국에는 9월에 학기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스포츠에도 유럽 축구는 하반기에서 시작하여 다음 연도의 상반기에 마무리된다. 그래서 유럽의 프로축구는 현재 23-24시즌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음력은 양력보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설날이 공식적인 기준이 된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많을 것도 같다. 또한 1월 1일에 바뀐 것들이 얼마 안 되어 오는 설날에 다시 바뀌게 된다면 혼란이 올 것이다.

하지만 정서상 설날이 심기일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설날의 긴 휴식을 이용하여 분위기를 쇄신하기 쉽기 때문이다. 요즘 명절의 의미는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그냥 쉬거나 즐기는 시간을 번다는 의미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기를 기피 하는 젊은 사람도 많다. 취직이나 결혼 등이 어려운 신세대에는 과거의 덕담이 오히려 짜증이 나는 만남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남는 시간이 올 한해의 일을 구상하는 시간으로서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올해는 청룡의 해인 갑진년이라고 한다. 이는 갑자기년법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청룡의 해’니 ‘용띠’니 하는 것은 음력이 더 어울린다. 동양의 사상인 ‘청룡의 기운’을 얻기 위한 해맞이를 한다면 오히려 설날 아침이 더 어울릴 만하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는 기후처럼 계절의 순서는 봄으로부터 시작한다. 1년을 만물이 소생하는 봄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농사의 시작을 봄에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몸의 생체리듬에도 반영된 것 같다. 몸으로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봄이 오면 괜히 이상해지는 기분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침 올해의 설날은 입춘 직후에 오기 때문에 봄의 시작과 얼추 맞게 된다. 한겨울인 양력 1월 1일보다는 더 어울리기는 한다. 혹시 1월 1일 시도했던 일이 작심삼일로 끝났다면 설날에 다시 시작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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