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연동형 제도 자체는 취지나 방향성을 문제 삼을 수 없다. 양당 중심의 극한적 대립 구도를 완화하고 소수정당에 문호를 넓혀 다당제를 유도하는 순기능이 분명하다. 문제는 사상 초유의 위성정당 출현이라는 꼼수를 허용한 제도적 결함이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가자는 것은 유권자들을 우롱하는 처사다. 이 대표 스스로도 위성정당 금지 입법을 공약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이날 준연동형제를 유지하겠다고 하면서 아예 대놓고 범야권 위성정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이 준연동형 유지를 전제로 위성정당을 준비 중인 점을 거론하며 "여당의 위성정당 반칙에 대응하면서 준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는 통합비례정당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옹색한 해명으로 들린다. 원내 1당 대표로서 책임 있게 허점을 쳐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 상대당 탓으로만 돌리며 위성정당 창당을 합리화하려 한다는 느낌이다. 4년 전 무책임한 행태를 보인 민주당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여야 합의 관행을 깨고 준연동형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민주당은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자 이를 꼼수라고 비판하다가 결국 자신들도 위성정당을 만드는 자가당착을 보였다.
여야의 협상이 남아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뜻대로 선거제가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현행 준연동형이 유지되면서 지난 총선과 같은 '떴다방'식 위성정당이 또다시 난립할 소지가 커졌다. 4년 전 총선 때는 비례대표 선출을 위해 등록한 정당 수가 무려 35개에 달했다. 병립형 회귀를 주장하는 국민의힘도 이미 현 제도 유지에 대비해 '국민의미래'라는 위성정당 창당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통합비례정당은 진보세력과 연합해 후보를 내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아 '금배지'를 두고 범야권 내부의 복잡한 협상이 예상된다. 무늬만 민주진보진영 통합비례정당이지 실상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거제는 게임의 룰이고 국민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는 점에서 민의를 바탕으로 정치적 합의 절차를 거치는 게 중요하다. 이번 총선에서 또다시 정치를 희화화하고 퇴행적 움직임이 벌어진다면 책임을 심판하는 건 오롯이 유권자들의 몫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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