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세종대 교수

  15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체코 공화국 프라하의 로브코비치(Lobkowicz) 가문의 성(Castle)에 초대되었다. 하버드 대학 출신의 미국 친구가 프라하를 방문하는 계기에 맞추어 나도 오랜만에 친구도 만날 겸 프라하를 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로브코비치 성에서 ‘하버드 모임’이 이루어졌다. 로브코비치 성의 왕자가 내 친구와 함께 하버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고, 영국 캠브지리 대학 교수인 피터는 하버드에서 경제학 박사를 했고, 나는 현재 옥스퍼드대에 있지만 과거 하버드대학에서 방문 교수를 한 것을 계기로 모두 하버드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던 모임이다.

로브코비치 가문은 15세기부터 귀족 가문으로 10대 왕자까지 내려왔는데, 공산주의 혁명으로 해외로 흩어지면서 체코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가 체코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다시 체코로 돌아와 과거 가문의 재산을 환수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오랜 노력을 거쳐 재산환수법을 통과시키고 하나씩 재산을 환수하는 동안 머리가 많이 빠질 정도로 힘들었는데, 지금은 몇 개의 성이 환수되었고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각종 보물과 문화 유물들을 모아서 로브코비치 성 박물관에 비치하여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가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이런 의식이 더 있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먼저 성 박물관을 관람하였는데, 로브코비치 본인이 직접 오디오를 만들어 소개하는 형태로 진행되어서 훨씬 생동감이 있었다. 자신의 가문과 체코 역사 변화와의 관계 및 문화 유산을 어떻게 모았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림 뿐 아니라 각종 도자기, 장식품, 사냥 총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음악관련 악기와 악보였다.
과거 유럽 귀족들이 베토벤, 모차르트, 헨델 등 유명한 음악가들을 지원하면서 그들이 창작을 하도록 독려하였는데, 로브코비치 가문에서도 이런 지원에 열정적이었던 관계로 헨델의 메시아 원고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가 편곡한 악보 및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 돈 지오반니(Don Giovanni) 오페라 악보도 소장하고 있었다. 다양한 악기도 전시하고 있는데 이 박물관은 체코 공화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소장량이 많은 개인 박물관이라고 한다. 로브코비치 성에서는 점심과 저녁에 다양한 연주회를 개최하여 과거 귀족들이 우아한 성에서 어떻게 음악을 즐겼는지 그 느낌이라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로브코비치는 정치적 폭풍우가 몰아칠 때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완전히 체코에 정착하여 가문의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시대가 완전히 바뀐 상황에서 여러개의 성을 지닌 일반인이자 귀족의 가문이라는 역사적 짐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 매우 궁금하였다. 그는 여러개의 성이 있지만 성에 살고 있지 않고 근처 일반 집에 거주하면서 성은 사회 활동 장소로만 활용하고 있었다. 성에 거주하면 자녀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사회적 반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면서도 과거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잘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고 하였다.

부인도 미국에서 만난 로마니아 귀족 출신이므로 가족이 유럽의 귀족으로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자녀들이 유럽문화와 역사를 전공하도록 독려하였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문화유산이 단지 개인의 소유에 그치지 않고 체코의 문화유산으로 의미를 지니고 대중에게 역사 교육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려 하는데, 이 정도가 20년 이상 노력하여 얻은 성과지만 아직도 환수해야 할 것이 많이 있다고 하였다.

그림이나 도자기 등 명확하게 누구의 것인지가 표시되어 있지 않는 물건들을 어떻게 환수할 수 있느냐 질문하니 독일이 체코를 점령했을 때 기본적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둔 것이 있고 공산 정권에서도 가문의 성을 굳이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근거로 하나씩 찾아 내었다고 한다. 여전히 100여 곳에 흩어진 가문의 문화재를 찾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런데 로브코비치가 단순히 가문의 재산을 찾는 것이라면 국민적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새롭게 ‘현대 귀족 문화’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였다. 체코 공화국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 전통적인 왕자로 군림할 수 없지만 새 시대에 맞는 귀족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친구 덕분에 로브코비치 성에서 멋진 시간을 가지면서 ‘현대 귀족’의 고뇌와 유럽 역사 변화를 생각했을 뿐 아니라 역사가 어떻게 발전적으로 계승되어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