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언 사회부 기자

▲ 김승언 사회부 기자.
이맘때 쯤 대구광역시(전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의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방문할 때면, 늘 대문 앞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는 할아버님은 나를 정말 예뻐해 주셨다. 장손(長孫)도 아닌 차손(次孫)인데도 말이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마당을 지나면 퉁퉁이(할아버지가 기르던 소)가 콧방귀를 뀌며 나의 관심을 끌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우사 옆에 있는 건초(뇌물)를 한 움큼 쥐어 퉁퉁이에게 먹이고는 “할아버지를 잘 부탁해”라며 마음 담은 당부를 전하곤 했다.

외투를 벗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시는 어머님은 이미 앞치마를 두르고 열일(?) 중이신 큰어머니와 명절 음식 준비를 시작하신다. '환상의 콤비'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거실 한쪽에 앉아 할아버지·할머니와 오랜 대화를 나누고 계신다.

사촌 누나, 사촌 형 그리고 나, 4살 터울의 동생은 이 틈을 타 하루 남짓한 시골생활을 알차게 즐기기 위한 탈출을 감행한다.

인근 기찻길에 들러 기차가 곧 지나간다는 ‘띵띵띵띵’ 알림이 들리기 전까지 기찻길 위에 서있는 위험한 놀이를 즐긴 후 할아버지 밭 옆에 있는 500년 된 고목으로 뛰어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무를 타기 시작한다.

고목 위에서 바라보는 시골의 풍경은 도심에서 바라보는 빌딩숲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쾌적하고 후련하며 때로는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느낌을 주곤 했다.

한바탕 쏘다니고 나면 어느새 점심밥을 달라고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때마침, 사촌 누나의 “이제 집에 가자”라는 목소리에 우리는 일렬횡대로 양손을 맞잡고 할아버지 댁으로 달려간다.

계란 고명과 김 가루가 조화를 이루며 소고기가(조금) 들어간 떡국 앞에 재빠르게 숟가락을 들라서면, 누군가의 따가운 눈초리에 멈칫,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 술 뜨시고 나서야 식사가 시작된다.

10명의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떡국은 맛은 차치하고 그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식사하며 오가는 덕담을 당시에는 이해 못 했지만 돌이켜 보면 너무나 따뜻한 말들 그리고 좋은 말들이 가득했던 것 같다.

점심식사가 끝나면 큰어머니와 어머니는 다시 한번 환상의 호흡을 발휘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한다.

배도 부르고 오전에 활동했던 피로감 때문인지 나는 늘 낮잠을 잤다.

도심의 가스보일러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할아버지作 아궁이와 전통 황토방, 너무 뜨거워 바닥에 이불 두 개를 더 깔고 잔 적도 있다.

낮이 짧은 시골의 해가 저물 때쯤 기상하면 고모(4분)네 식구들이 하나둘 도착한다.

이때부터 ‘진짜’ 설날이 시작된다. 첫째 고모부터 막내 고모부까지 그리고 사촌 형제들은 온 집안을 가득 채우며 집은 곧 북새통으로 변한다.

잘 지냈냐는 가벼운 인사부터 이직을 고려해야 한다는 무거운 대화까지도 ‘가족’이기에 터 놓고 얘기 할 수 있던 것 아니었을까.

우당탕탕, 대면 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렬횡대로 선 후 첫째 고모의 신호에 맞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를 외치며 세배를 드리고 나면 올해의 설날이 끝나가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할아버지·할머니의 조언과 격려, 소망들을 경청하며 다시 한번 조상님들께 감사드리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 속 어느새 시골의 밤하늘은 한 폭의 그림 같은 별들이 수놓고 있었다.

올 설은 시골에 가지 않고 도심에 위치한 큰아버지 댁에서 차례를 지낸 후 간소하게 끝낼 예정이다.

귀성길의 지루함도, 도심을 벗어나 마시는 신선한 공기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내 기억 한 켠에 쌓인 ‘설날’의 추억들을 회상하며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릴까 한다.

2024년의 첫 명절, 온 국민이 ‘같이’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길 소망하며,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설 연휴가 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