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훈식 모동초등학교장

 길을 가다 보면 현수막을 내걸어 자랑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누가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아니 누구 하나 전혀 궁금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상을 받았음을 비롯하여 시험에 합격했다거나 승진했다면서 말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온 동네 곳곳마다 걸어서 자랑이다. 자녀가 말단 공무원과 고시와 같은 시험에 합격하거나 높은 직위에 승진하면 본인의 이름은 물론이고 부모님의 이름도 함께 당당히 내걸린다. 꽤 자랑스러운지 현수막이 빛에 바라고 바람에 찢기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걸어 놓기도 한다. 그렇다 해서 떡 하나 얻은 먹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다.

반면에 이와는 달리 기이한 현상을 볼 수가 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정보 보호 차원이라면서 명단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름과 같은 단순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각종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지나치게 개인정보의 보안을 강화하는 것을 보노라면 우려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실례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직원이 누구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럼 다른 기관에도 그런가 하고서 들여다보면 직원 이름과 함께 직책과 업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학교에서 유독 두드러지는지 그 원인을 생각해 보지만 나로서는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예전에는 교직원의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얼굴까지 공개하였다. 아마도 아이들 교육의 한 부분을 맡은 학교의 일원인 것이 자랑스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어느 기관보다도 인사고과를 비롯한 모든 일 처리를 투명하고도 공정하게 한다고 본다. 그러함에도 본인이 소속되어 있는 교원 단체(교총, 교사노조, 전교조)나 교육행정직과 공무직의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알리지 않는다. 혹여라도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점에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소속된 단체로 인하여 불이익을 줄 수도 없고 받을 일이 없는 게 현실이다.
본인의 소속을 알리지 않고자 하는 간절함이 얼마나 컸으면 일부 단체에서는 급여에서 회비를 떼어 가던 것조차도 개인 통장으로 바꾸어 이제는 본인 스스로가 커밍아웃하지 않는 이상 누가 회원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누가 그런다. 그러면 당신은 소속이 어디냐고. 그럼 나는 무소속이라고 말한다. 밝히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내 이름이 현수막에 걸려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고 보았기에 당연히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공모 교장으로 취임하는 첫날 출근하면서 교문 옆 담장을 보니 축하 현수막이 걸린 게 아닌가. 보는 순간 낯설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현수막이 한 번 더 걸린 적이 있었다.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을 추진한 결과다. 학부모의 95.8%가 통폐합을 찬성하였지만, 반대하는 일부의 동창회원들이 양교의 학교장, 총동창회장 외 임원, 운영위원장, 학부모회장을 비롯하여 지역청 담당자가 함께한 공식적 자리에서 거듭 약속한 통폐합의 추진 합의를 믿지 못한다며 그들 스스로가 합의한 내용을 깨고서 머리띠와 어깨띠, 현수막에 ‘신훈식 교장 퇴진’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언론에까지 이름을 알린 것이다.
그 결과 비록 통폐합은 실패하였지만 뒤돌아보면 가장 명예롭게 이름을 알린 그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지역 학교가 곧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음이 눈에 빤히 보이기에 그냥 둘 수 없어 인근 학교와의 통폐합을 통한 구조조정으로 많은 예산을 확보(40억) 유치(100억)하기 위함이고, 그 어느 지역보다도 앞선 새로운 초등학교 교육시스템을 구축하여 항구적인 학교 살리기를 하고자 함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미래 교육시스템을 개혁해가고자 함이었다.

모든 일에는 때와 시기가 있는 법이나 이대로가 그냥 좋다고 하면서 때와 시기를 놓친 나머지, 미래 세대의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와 기회를 앗아간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희망에 부푼 아이들의 마음을 사정없이 베어내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울 뿐이다.

이런 일에도 이름을 밝힌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데 하물며 헌법의 전문에까지 그토록 자랑스럽다고 자부하는 그 정신을 싣자고 하는 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름을 왜 숨길까? 지나친 겸손! 아니면 말하지 못할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온갖 상상이 된 나머지 이러다가는 아이를 낳고서도 출생 신고마저 하지 않겠다고 하는 세상이 오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그 누구도 자기를 알아보거나 말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모두의 입과 눈을 가리거나 사라지게 하는 세상이 혹여라도 오지 않을까 하고서 생각하면 끔찍하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누구든 어떠한 일에서든지 숨김없이 실명을 투명하게 밝힐 때 비로소 많은 이들이 의심 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러할 때 당사자 또한 당당하게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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