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세종대 교수

  신성로마제국 시기 유럽의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였던 보헤미아 수도 프라하 올드타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948년 올드타운 광장 킨스키 궁전 발코니에서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면서 공산주의 국가로 변모했던 관계로 대다수 사람들은 가보지도 않고 특정 편견을 갖지만 직접 방문한다면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 모습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올드 타운 광장에 천동설에 기초하여 우주관과 기독교 기념일을 표시한 천문시계는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시계 양 옆에 있는 4개 인형 중 “모래시계를 든 해골은 죽음을, 거울을 든 청년은 허영을, 금자루를 든 유대인은 부에 대한 욕심을, 악기를 든 터키인은 쾌락을 의미”한다. 종소리와 함께 부와 쾌락과 허영을 추구하는 인간들은 곧 죽음의 시간을 닥칠 것을 암시한다고 한다.
광장에는 15세기 보헤미아 종교개혁자이자 체코의 영혼을 깨웠다고 평가되는 얀 후스(Yan Hus, 1372-1415)의 동상이 있다. 그는 성직자의 길을 가려고 독일 카톨릭 영향이 강했던 프라하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해당 대학에서 신학교수를 거쳐 총장의 자리까지 오를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고 카톨릭 교회의 오류를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는 영국에서 성경을 번역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교회와 교황이 성경의 권위에 굴복되어야 한다는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의 주장에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후스는 종교개혁자 루터보다 100년 전에 교황권을 부인하고 오직 성경만이 진리임을 외쳐 1415년 콘스탄츠에서 화형으로 단죄된 사람이다. 그는 화형당하면서 “당신들은 지금 거위 한 마리를 태우지만 100년 후 백조가 나타날 것인데 당신들은 그 백조를 결코 태울 수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100년 후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깃발을 들고 등장하였다. 후스가 처형되기 2년 전에는 그의 생가인 후소바(Husova)에서 '성직 매매에 대하여'나 '교회론'을 저술하여 향후 종교 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를 이단으로 낙인찍어 화형시킨지 500주년을 기념하여 1915년 올드타운 광장에 세워진 동상에 “진실을 사랑하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행하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종교개혁을 주창하는 후스파의 근거지였던 틴(Tyn) 성당은 1612년 카톨릭 성당으로 변모하였는데, 후스의 동상은 이 교회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역사의 역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618년에는 개신교파 귀족이 카톨릭 관리를 창밖으로 내던진 ‘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이 발생하여 신구교간 30년 종교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수십년간의 종교전쟁은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기도 하였다.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의 암울함과 회한은 체코의 국민음악가 스메타나(Smetana, 1824-1884)의 ‘비세흐라드’라는 음악에 녹여져 있다. 체코 국가의 발상지라 불리는 비세흐라드는 오래된 전설과 신화가 넘쳐 나는 곳인데 400년 전 당시 후스파가 카톨릭 세력 거점인 비세흐라드를 점령한 후 폐허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 폐허의 흔적에서 민족의 아픔을 담아낸 스메타나의 음악에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스메타나 작품 중 유명한 「나의 조국」에서 제5곡 ‘타보르(Tabor)’는 후스파의 항전을 묘사하였는데,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던 변화산을 이스라엘에서 타보르 산이라고 하는데 보헤미아에서도 타보르는 변화, 계시의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후스가 처형된 뒤에도 타보르를 거점으로 얀 지슈카(Yan Zizka, 1360-1424) 장군이 카톨릭 세력에 저항하자 교황은 십자군을 동원하고 칙서를 발행해서 후스 추종자를 진멸하도록 명령하였다. 지슈카는 생전 무패 장군으로 체코의 국민영웅이다.
'나의 조국' 제6곡 ‘블라니크(Blanik)’는 후스파가 진지를 마련했던 블라니크 산의 모습이 묘사된 것이다. 스메타나가 이끄는 국민극장 관현악단에서 비올라 연주를 했던 드보르자크(Dvorak, 1841-1904)는 지휘자의 영향을 받아 민족적 정체성을 담은 곡을 작곡하게 되는데 체코의 민족주의 음악을 세계적인 음악으로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그의 작품중 하나가 ‘빌라 호라의 후계자들’과 ‘후스교도 서곡 다단조’이다.
프라하 올드 타운에 서 있는 얀 후스의 동상으로부터 체코에 엄청난 상처를 남겼던 종교전쟁 뿐 아니라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체코인의 민족정체성을 일깨운 민족음악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의 작품이 어떻게 얀 후스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다면 광장에 세워진 약속 장소로서의 동상으로만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