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세종대 교수

  프라하 올드 타운에서 꼭 방문해 보면 좋을만한 곳이 유대인 구역이다. 1535년에 건립된 핀카스 회당(The Pinkas Synagogue)은 유대인이 400년간 예배를 드린 곳인데 지금은 나치에게 희생된 유대인 희생자를 기념하는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회당 전체 벽에는 아우슈비치 등 죽음의 캠프로 이송되어 희생된 77,297명의 체코 유대인의 이름이 손글씨로 쓰여져 있다.
회당 내부 전체가 흰색 바탕인데 거기에 깨알 같은 글씨로 성은 붉은 색, 이름과 생년월일 등은 검은 색 손글씨로 써 놓은 현장에는 이들의 이름을 읊고 시편을 부르는 찬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각종 유물들을 쌓아 놓은 아우슈비치의 현장과는 또 다른 전율이었다. 2층에는 체코 테레진(Terezin) 수용소(Concentration Camp)에 수감되었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아이들의 눈으로 본 당시의 실상은 또 다른 형태의 아픔을 느끼게 하였다.

핀카스 회당 옆으로는 1439-1787년까지 유대인 매장지로 사용된 12,000여개의 묘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지역은 프라하의 유대인이 사용할 수 있게 허락된 매장지였다. 좁은 면적에 수백년 동안 유대인 묘지로 사용했는데 7-8개 지층으로 층층히 쌓여 있는 묘지에는 10만기 정도 매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대인은 무덤이 ‘삶의 처소(House of Life)’라고 생각하고, 죽음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여겨서 이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핀카스 회당에서 학생 및 연세가 많은 각기 다른 유대인 단체 여행객이 진지하게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묘지에 나가보니 묘지 한켠에 서서 열심히 뭔가를 읽고 기도하는 무리가 보였다. 젊은 학생과 청년들 그룹이었는데 이들이 잠시 몇 분간도 아니고 몇 십분 동안이나 묘지에 서서 기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대인 묘지에 묻힌 영혼을 위해 기도로 또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유대인이라는 것 때문에 묘지에 묻힌 영혼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기도 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갔을 때 보았던 서쪽 성벽에 서서 통곡하면서 기도하던 유대인의 모습과 중첩되기도 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이 고통의 현장까지 와서 유대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를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즐겁고 신나는 일도 아니고, 유대인 구역을 돌아보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이는 이유는 이런 과정을 통해 유대인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는 것은 아닐까? 역사를 잊지 않아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묘지 옆으로 17세기에 세워진 클라우스 회당(Klaus Synagogue)에는 유대인 달력에 맞는 종교 절기와 절기에 맞는 물품이 잘 전시되어 있다. 특히 유대인이 중시하는 토라(Torah)는 직접 만질 수 없기 때문에 손가락 형태의 포인터가 같이 전시되어 있는데, 유대인의 종교 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2층에는 유대인의 일상 생활과 관련된 전시도 병행되어 전체적으로 유대인 문화를 대중에게 교육하는데 매우 유용해 보였다.
유대인은 10세기 중세 무역 중심지였던 프라하에 모여 정착하기 시작했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교황이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함께 살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바람에 유대인은 노란 뱃지를 달고 특정 지역에만 살게 되었다. 16-17세기 프라하는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인 거주지인 게토(Ghetto)가 있었는데 200여 채의 나무로 지은 집에 살도록 하였기 때문에 거주지라기 보다 유대인 새장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780년대에 조세프 2세 황제(Josef Ⅱ)는 유대인의 경제적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약화시켰고, 1848년에는 유대인 구역의 담을 헐어서 이웃들과 교류할 수 있게 하였다. 1939년 프라하에는 120,000명의 유대인이 살았는데 대부분 홀로코스트의 대참사로 희생되고, 1945년에는 10,000명 정도만 살아 남았다고 한다. 현재는 체코에 3,000여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살짝 음산한 날이었는데 유대인과 관련된 고통의 역사를 돌아보느라고 우울했던 마음을 달래기 위해 1800년대에 건축된 스패니시 회당(Spanish Synagogue)에서 하는 음악연주회에 참여하였다. 온통 황금색으로 장식된 이토록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유대인 회당은 처음 보았다. 아름답고 우아한 회당에서 5명의 현악기 연주자와 한 명의 소프라노 가수가 연주를 하는데, 처음 한 소절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눈물이 쏟아지려 해서 참느라고 혼났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Nabucco)에서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나왔기 때문이다. 유대인 구역의 각종 역사를 보면서 가슴 아팠던 마음이 연주를 들음으로 정화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유대인 핍박의 역사를 어떻게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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