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니카 수필가

​당신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볼 때가 좋다
차가운 겨울 밤하늘에 비껴 뜬 보름달이 나를 바라보듯
풀을 뜯던 들녘의 소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듯
선암사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새가
홍매화 꽃잎을 쪼다가 문득 나를 바라보듯
대문 앞에 세워둔 눈사람이 조금씩 녹으면서 나를 바라보듯
폭설이 내린 태백산 설해목 사이로 떠오른 낮달이 나를 바라보듯
아버지 영정 앞에 켜둔 촛불이 가물가물 밤새도록 나를 바라보듯
물끄러미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가 좋다
눈길에 버려진 타다 만 연탄재처럼
태백선 추전역 앞마당에 쌓인 막장의 갱목처럼
추적추적 겨울비에 떨며 내가 버려져 있어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 속에는
이제 미움도 증오도 없다
누가 누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사랑보다 연민이 있어서 좋다

<수필가가 바라본 시의 세상>

우두커니 한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물끄러미’라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한 눈빛은 ‘물끄러미’가 아니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눈빛이지만 목적이 없이 바라보는 모습이 ‘물끄러미’다. 시인은 그런 모습을 황홀할 정도로 미학적인 표현을 썼으며 그 미학적 표현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선암사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새가 매화 꽃잎을 쪼다가 문득 나를 바라보듯’ 이라든가

‘폭설이 내린 태백산 설해목 사이로 떠오른 낮달이 나를 바라보듯’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절창이지 않은가. 그 눈빛은 필시 따스하고 아름다운 눈빛일 것만 같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을 의식했을 때가 언제였던가. 길고 먼 옛 일인 듯 아득하기만 하다. 힘들고 지친 일상에 허덕일 때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아주고 있는 사람을 상상으로 만들어둘까. 그러면 위로가 될까. 겨울비인 양, 내리는 봄비에 흰 목련 꽃망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어느 날…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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