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무려 84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다. 바다에 나간 지 85일 째 되던 날 산티아고는 멕시코 만에 도착, 그날 바로 그는 거대한 청새치를 낚아채는데 성공하게 된다. 거대한 청새치는 늙은 어부가 잡아채기도 전에 오히려 그 보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늙은 어부와 청새치는 무려 이틀간이나 서로 치열한 전쟁 끝에 드디어 고통스러운 싸움을 끝내게 된다. 3일간이나 지친 형색으로 청새치는 늙은 어부의 보트 주변을 돌며 힘겨워할 때 그 노인은 청새치를 형제라고 부르며 동정심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결국 산티아고는 남은 힘을 다해서 청새치를 보트 가까운 곳으로 그물을 당겨 마지막 작살로 일격을 가하며 지루한 싸움을 끝내기에 이르렀다.

노인은 청새치를 보트에 매달고 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 것이라고 생각하며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배를 육지로 향했다. 집으로 오는 길목에서 청새치의 피가 수 많은 상어를 유인했고, 5마리의 상어를 죽이는 사투 끝에 나머지 상어마저 다 쫓아버렸으나 그날 밤 다시 접근한 상어 떼들이 뼈만 남기고 청새치를 다 먹어 치워버렸다. 무기력감에 다 잃어버린 청새치에 대해 안타까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산티아고는 무거운 돛대를 어깨에 메고 가까스로 집에 도착, 침대에 쓰러져 긴 잠에 빠져버렸다. 그 시간 동네에서는 산티아고가 드디어 큰 청새치를 잡았다며 뼈가 달린 배를 둘러싸고 있을 때 어린 소년은 눈물지며 그 늙은 어부에게 신문과 커피를 가져다준다.

중학생시절 처음으로 읽었던 명작 소설이 바로 ‘노인과 바다’였다. 작가인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늙은 어부 ‘산티아고’였고, 그 노인이 곧 ‘헤밍웨이’였다. 그 이후부터 헤밍웨이의 작품에 탐닉하기 시작했고, 그의 명작 ‘무기여 잘 있거라’는 최고로 사랑하는 작품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후에 문화극장이라는 단체 영화 관람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흑백의 영화 속에서 비친 아름다운 정경들과 전쟁 속에서 자유를 찾아 한 밤 중 스위스로 도피하는 장면. 스위스에 도착해서 요들송을 부르는 두 사람. 그러나 아이를 사산하며 눈을 감는 연인을 뒤로 한 채 홀로 쓸쓸히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가는 엔딩 신. 언젠가 스위스는 반드시 가보고 싶었던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세월이 많이 흘러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첫 발을 내 딛었을 때 그 벅참이 생각난다. 업무 상 유럽원자핵 공동연구소(CERN)을 방문하기 위해 찾았던 제네바의 공원분수에서 그리고 짬을 내어 찾아간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 에서도 그 작품과 영화 속 두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루체른에서 산자락을 깎아서 만든 거대한 사자상을 보며 가슴 벅참으로 위안을 삼았다.

언젠가 청소년 시절 그렇게 좋아했던 늙은 어부 ‘산티아고' 그 자체인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들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며 보내온 사진에서 헤밍웨이를 발견하고 무척이나 기뻤다. 방학 때 여행 차 들린 플로리다에서 헤밍웨이 생가를 발견했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그러고 보니 헤밍웨이는 1930년대 미국 플로리다에 거주를 하다가, 1940년대부터 쿠바에서 거주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쿠바를 상징하는 무언가를 말할 때 반드시 헤밍웨이를 말한다고 한다. 쿠바, ‘꼬히바’로 불리는 시가, 럼주, 야구, 올드카, 사회주의 혁명가 체게바라, 그리고 헤밍웨이, 낭만적 심상으로 가득찬 도시 하바나, 쿠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안타까운 자살, 허무주의, 강한 남성상. 쿠바를 사랑했던 작가, 노벨상 수상 당시 쿠바에서 집필했다는 이유로 쿠바를 사랑한 남자, 자신이 받았던 상과 그 영광을 쿠바사람들에게 바치고 싶어 했던 ‘모히또’를 즐겼던 남자.

‘무기여 잘 있거라’를 찾아 떠난 스위스와 1959년 우리와 단교 후 더 이상 갈 수 없었던 나라, 쿠바. ‘어네스트 헤밍웨이’ 그와 그의 흔적은 이제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작은 영웅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 2024년 2월 어느 날, TV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 쿠바는 대한민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되었고 우리의 문화가 널리 깊숙하게 퍼져 이 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교역이나 교류가 지금보다 더욱 더 활발하고 크게 확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들에게는 형제국가나 마찬가지인 북한에 일시적 충격을 가한 상태이고,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될 것이라 조심스레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국과 쿠바가 새로운 외교질서로 인해 자리 잡은 수교의 의미를 되새기며 실용과 국익을 도모하였으면 한다. 그리고는 언젠가 시가 향을 맡으며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그 선술집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 모히또를 한 잔 하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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