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예전 대구에 어떤 어른이 한 분 계셨다고 한다. 이 분의 별칭은 부자 거지라고 했는데 대구에 사셨거나 사시는 분 중 아시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 이 부자 어르신이 어느 날 쫄딱 망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참 재미있다. 이 분은 고등어를 좋아하시는데, 고등어를 구워서 살은 파먹지 않고 고등어 껍질만 밥에 싸서 말아 드시는 바람에 그 많던 재산을 탕진하셨다는 것이다. 그 비싸고 귀한 고등어를 껍질만 먹고 버렸으니 얼마나 부자였느냐는 말씀을 어머니께서는 얼마나 제게 해 주셨는지 귀에 못이 앉을 정도였다. 그 당시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진짜인 줄 알고 솔깃하게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 말씀이 맞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우리 집 밥상에는 고등어구이가 올라오는 날에는 껍질부터 서로 먹겠다고 난리를 친 기억이 있다. 운이 좋아 고등어 껍질을 집게 되어 먹는 날은 마치 대구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제 어른이 되고 보니 대구에 그런 사람이 진짜 살고 있었나? 살짝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이건 마치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이들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맹신하고, 어른이 된 후 분명 산타클로스는 없을 텐데 굳이 그 사실을 확인하기 싫어하는 심리와 왠지 묘하게 닮아있다. 그렇게 고등어는 우리에게 곱고 귀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또 다른 이야기, 그 때가 아마도 중학교 시절이었는지 모르겠다. 체력장을 앞두고 1,000 미터 장거리 달리기 연습을 하거나 수검 도중 가끔씩 사고로 죽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또래 아이들에게는 체력장 시험 중장거리 달리기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실 체력장 점수가 전체 200점 중에서 20점이나 차지할 정도니까, 이론 과목의 180점 중, 점수를 하나라도 더 얻기보다는 체력장에서 만점을 받아 점수를 까먹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거리가 고작 1Km 밖에 되지 않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시간 내에 들어오기 위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께서 몇몇 학생들에게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전갈을 받고 어머님께서 학교를 찾아오셔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셨다. 몇 아이들이 공부를 한다고, 특히 체력이 많이 허해진 학생들의 부모님께 면담을 요청하시고선, 아이들에게 고등어를 사서 풀어서 국을 끓여 추어탕처럼 해먹이면 양도 많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당시 TV나 라디오에선 자주 아이들이 체력장을 하다가 숨지는 일이 있었으므로 담임 선생님께서는 여간하게 신경이 많이 쓰이셨나보다. 이렇게 여러모로 고등어라는 생선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음식으로 기억이 된다.

어른이 되고, 일본 여행 중 어느 식당에서 정식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고등어구이가 있었다. 그런데, 고등어구이가 우리네 집에서 요리 되던 방식과는 너무 다르고 고급스럽게 품격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고등어는 겉이 타고 껍질과 속살이 분리되고, 목은 부러져 온 집안이 생선 굽는 냄새로 진동을 하는데 비해, 알맞게 토막 난 생선 크기에 노릇노릇하게 굽혀져 나온 고등어가 너무 깨끗하고 맛깔스러웠으며 품격마저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요리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생선 전용구이 기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생선이 맛이 있는 것은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선도를 유지한 재료를 사용해서 구이를 하는 것이 가장 맛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걸 보면 내륙지방에서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 간을 해서 신선도를 유지하는 안동 간고등어의 간잽이도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던져 넣듯 집어넣는 소금의 양이 기계로 재어 투여하는 것 보다 더 정확하다고 하니 사람의 손 맛, 손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금 느껴진다. 포항 구룡포가 고향이신 구순의 노모. 어릴 적 조부모께서 대구로 이사를 하여 평생 대구에서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사시지만, 지금 그 좋아하시던 생선도 자주 드시지 못해 늘 죄송스럽다. 자식이 포항에 살고 있어도 매번 고등어를 사들고 대구로 갈 수가 없다는 핑계로 오늘도 어머니와 고등어를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는 고등어를 좋아하시기도 하지만 참 맛깔스럽게 드신다. 넓은 김치 한 폭에 고등어 젓가락 한 찜을 떼서 젓가락으로 마치 쌈을 싸듯 해서 드신다, 그러면 그 것이 바로 천상의 맛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등어를 감싸고 있는 김치가 그렇게 강력하게 생선과 조화를 이루어 맛을 상생하는 능력이 있는지 그저 놀랍다. 그 옛날 대구에 돈 많은 고등어껍데기 부자가 계셨는데 그 분처럼 고등어 껍질에 밥을 싸서 먹지는 못해도 고등어 속살을 떼어 내어 김치에 싸서 밥과 함께 먹으며 부자가 된 기분을 만끽한다. 문득, 날씨가 추워지고 사는 것이 바쁘다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그저 핑계만 대는 자식 놈이 죄송스럽기만 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늘 어린아이처럼 철부지인가 보다. 그 옛날 먹고 살기 힘드셨을 시절, 자식 입에 들어가는 생선 하나도 구하기 어려웠을 시절을 생각하니 그저 죄스럽기만 하다. 자주 연락도 못 드리는 불효한 자식이 당부 드립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곁에 계셔 주십시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