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세종대 교수

  캠브리지라는 명칭은 캠(cam) 강을 건널 수 있는 브리지(bridge)가 합쳐진 용어인데, 875년에 이 이름이 존재하였고, 1086년 경에는 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중요한 거래 중심지로서 역할하였다. 시내에 몇 개의 종교 관련 수도사들의 지적 명성과 학문적 공헌이 캠브리지 대학 설립에 기초가 되기는 하였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자들이 몰려 오면서부터이다.
옥스퍼드 지역에서 여성 한 명이 죽었는데, 여기에 옥스퍼드 학자 3명이 연루되었다고 하면서 마을 당국이 학자들에게 우호적인 교회 당국과 상의도 없이 교수형을 집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옥스퍼드 마을에서 학자들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하였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타운(town)과 가운(gown)을 입고 다니는 학자간의 반목이라는 의미에서 ‘타운과 가운의 대립’이라고 설명한다. 옥스퍼드 마을 사람들의 폭력을 두려워한 옥스퍼드대학 학자들이 대거 주변 지역으로 떠났고 그 중 캠브리지에 정착한 학자들이 1209년 새로운 캠브리지대학 설립에 핵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캠브리지대학은 1231년에 구성원을 규율하고 세금을 면제 받을 권리가 허용되는 대학헌장을 헨리 3세로부터 부여받게 되었다. 1233년 그레고리 9세 교황은 기독교를 받아 들인 모든 나라에서 캠브리지 대학 졸업생이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 주기도 하였다. 헨리 8세는 캠브리지에서 교회법 학부를 해체하고 스콜라 철학 교습을 철폐함으로써 교회법에서 고전학, 성서학, 수학 등으로 배울 수 있는 학문 범주가 확대되었다.
캠브리지는 한 때 문학사 학위를 공부하는 학생들도 반드시 수학시험을 보도록 하였고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응용수학 발전에 노력하였다. 이런 전통이 이어져 현재 120명의 노벨수상자와 11명의 필즈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대학으로 유명세를 날리고 있으며 14명의 영국 총리도 배출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론 클럽인 캠브리지 유니온(Cambridge Union)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캠브리지는 오랫동안 남학생만 등록해서 공부할 수 있었는데, 1869년에 최초의 여자대학 거튼 칼리지(Girton College)가 세워진 이래 여학생을 받는 칼리지가 여러개 있기는 하였으나 1921년에 가서야 여성들은 문학사 학위에 해당하는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대학원 중심 대학인 다윈 칼리지는 1964년 창립 때부터 남녀학생 모두 입학이 가능하게 되어 시대적 변화가 반영되었다. 이후에 남자만 받던 칼리지도 여자를 수용하고, 여자만 받던 대학도 남학생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였지만 여전히 영국에서 유일하게 여성전용 칼리지가 남아 있는 것도 캠브리지 대학이다.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유명한 사람이 여러명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뉴턴(Isaac Newton, 1642-1726)이다. 1664-1666년 페스트가 런던에 퍼지면서 잠시 고향에 머물렀는데 어느 날 산책하면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일화가 있다. 따라서 뉴턴하면 사과나무를 연상한다. 이런 연유 때문에 뉴턴이 다녔던 트리니티 칼리지 정문 앞에는 아무런 설명 없이 사과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미 입소문으로 알고 있는 관광객은 트리니티 칼리지 앞에 심겨진 사과나무 앞에서 이를 배경으로 사과 들고 사진 찍는 재미있는 풍경을 만들고 있다. 물론 칼리지에서 관광객을 위한 배려이자 자연스럽게 뉴턴을 연상케 하여 칼리지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생각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캠브리지 대학 시작부터 옥스퍼드 대학과의 관계는 떼어 놓을 수 없고 두 대학 모두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대학이므로 이 두 대학간에는 자존심을 건 다양한 라이벌 경기가 열린다. 이 두 대학이 대항전을 펼치는 게임을 지칭하는 영어가 따로 있는데 Varsity라고 한다. 영국에서 이 두 대학의 교육 시스템은 일반적인 대학과 다르므로 이들만 사용하는 특별한 단어가 많이 있다. 물론 그런 단어를 알아 듣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들 대학과 관계된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이 두 대학은 다양한 교류를 하는데 이를 묶어서 옥스브리지(Oxbridge) 교류라고 한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를 줄여서 하는 말인데, 런던에는 이 두 대학 관계자들이 갈 수 있는 클럽이 따로 있고, 세계 각지에서도 이 두 대학 졸업생은 같이 모여서 활동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를 따라 옥스퍼드 대학 한인학생회도 캠브리지 대학 한인학생회와 같이 활동을 하는데 한 해는 옥스퍼드에서 다음 해에는 캠브리지에서 돌아가면서 학술심포지엄을 열어서 서로 교류하고 있다. 구정 설을 맞이하여 캠브리지 대학에서 개최하는 교류회에 참석하기 위해 옥스퍼드 대학 학생회는 버스를 대절해서 2시간을 달려 캠브리지 대학에 도착해서 주요 칼리지와 도서관 등을 방문한 후 학술회의를 마치고 3시간에 걸쳐서 저녁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 다양하게 대화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이렇게 다져진 우애는 졸업 후 한국에서도 같이 동문회를 하면서 교류하고 있다.
비록 간단한 교류였지만 캠브리지 대학이 형성되는 역사와 옥스퍼드 대학과의 교류가 어떻게 이어지게 되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옥스퍼드 대학내의 다양한 클럽 활동을 통해서도 특별히 캠브리지 대학과의 운동경기전을 많이 하기 때문에 실상은 잘 알지만 이번 캠브리지 대학 방문 계기를 통해 도시 규모는 작지만 영국의 과학계뿐 아니라 세계의 첨단 학문을 이끄는 기지로서 캠브리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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