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아침 일찍 일어나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서 칼럼도 쓰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도 보려고 인터넷에 접속을 한다. 메일을 열다 깜짝 놀랄 문자가 와서 충격 속에 한참을 어찌할 줄 모르고 모니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한국물리학회>에서 회원들에게 보내오는 소식지에서 포항공대 명예교수이자 물리학 박사이신 고 이동녕 전 가속기 연구소장님의 영결식 소식을 접하게 된다. 영결식은 2024년 3월 16일 오전 11시에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근교 시일비치 (Clubhouse 4, 1419 Northwood Road, Seal Beach, CA 90740)에서 거행된다는 뉴스였다.

대한민국의 과학자이시고, 핵물리학자이신 이동녕박사는 서울대와 서독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에서 석사를 영국 런던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를 취득하셨다. 현재 포스텍(전 포항공대) 물리과 명예교수로도 재직하고 계셨다. 30여 년 전 처음 연구소장님으로서 그 분을 뵙게 되었고, 늘 점잖고 자상하고 반듯한 모습으로 영국 신사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연구소장님을 존경했지만 워낙 명성이 높으신 주위 다른 분처럼 훌륭하신 줄만 알았지 그 분의 생애와 업적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진 못했다. 소장님께서 세상에 내 놓은 논문 한 편 읽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그저 부끄러움이 앞선다.

1927년에 태어나서 2024년 별세하실 때까지 여러 후학들을 양성하고 한국 과학계에 크나 큰 업적을 남기기도 하셨다. 여러 업적 가운데서도 한국과학의 심장이라는 한국 대형 과학 프로젝트인 <포항가속기연구소>를 건설하시고 운영하신 업적이야 말로 그 분의 사명과 임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포항공대 부지에 건설된 포항가속기연구소는 물질의 미세구조를 밝히기 위해 건설된 물리학계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한국 과학계의 이정표와 같은 우리나라 최초의 거대과학 시설이다. 우리나라 단군 이래 단일 프로젝트로서는 규모가 가장 큰 포항 방사광 가속기를 완공하여 운영함으로써 세계의 과학시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과학의 메카이다.

방사광가속기라고도 불리는 이 거대한 과학시설은 가시광선으로 투과할 수 없는 물질을 투과, 그 내부를 들여다보는 거대한 현미경과 같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시설물이다. 우리가 흔히 병원에서 말하는 X-레이 라고 하는 X-선은 가시광선으로는 투과할 수 없는 피부나 근육을 투과하여 뼈의 형상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차세대 방사광은 살아있는 동물의 심장을 찍을 수도 있다. 심장의 운동과 근육의 미세한 진동을 동영상으로도 촬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해상도도 1/1000의 마이크로 단위로 초음파보다 1,000배나 뛰어난 과학시설인 것이다. 지금도 후학들은 이 시설을 이용해서 수많은 실험에 나서고 있다.

1988년 4월 당시 포철과 포항공대에서 방사광 가속기 건설 본부가 발족되면서 이 거대 과학시설의 태동이 시작되었다. 그 해 5월 포항공대 부설연구소로 포항가속기 연구소가 설립이 되었다. 당시 1991년 젊은 나이에 포항공대에 임용이 되어 1994년 12월 포항 방사광 가속기가 완공될 때 까지 그 역사를 함께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PLS-2와 방사광 빔라인 증설 등 건설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건설 당시 이동녕박사님과의 일화도 많이 남아있는데, 그 중 하나가 ‘상여금 사건’으로 알려진 그 분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밤을 낮 삼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로 유명했던 곳이 바로 가속기연구소의 건설현장이었다. 날마다 수많은 동료 연구원들은 퇴근도 않고, 혹은 퇴근해서 잠을 자다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연구실로 모인 사람들이 늘 함께 북적대던 곳이었다. 그렇게 실패라도 할까봐 노심초사하며 보낸 6년간의 시간 끝에 가속기가 성공적으로 완공되었고 우리 모두는 축제분위기 그 자체였다. 그 해 연말 우리는 50%의 성공 상여금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이 연구원들의 기대와 욕심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고생하며 노력해서 결국은 성공했는데 이게 뭐냐고... 단위 별 행정실에 상여금을 반납하기에 이르렀다.

공부만 하고 착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기대에 비해 실망이 컸다. 그해 송년회에서 이동녕소장님께서 고생하셨다는 격려사를 하시면서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그 상여금을 얻어 오기위해 노력하신 소회를 말씀해 주시면서 받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그 누구 할 것 없이 다시 받겠다면 거수를 시작했다. 곧 송년회장은 거대한 거수의 물결로 다시 50%의 상여금은 지급이 되었고 노신사이신 이동녕소장님을 아끼고 존경하는 연구소원의 모습을 그곳에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은 가속기 완공 후 떠나시고 이렇게 부고를 통해 마지막 소식을 접하게 되는 침통함을 맞게 되었다.

아버지 같은 따스한 리더십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던 한국 과학의 심장 방사광가속기 창업자 고 이동녕박사님의 영면을 바라며 함께 해 주셔서 영광이었다는 말씀을 전한다. 소장님, 부디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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