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유리병 편지 사연들로 언론에 보도가 되는 일이 잦다. 유리 병속에 각자의 사연을 담아 던져 바다 건너 그 누군가 보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수신자 불명으로 보내는 편지인 셈이다. 그 중 유리병 편지의 최초라고 알려진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가 보낸 편지로 대서양 물결이 지중해로 흐르는 것을 실험하기 위해 병을 띄웠다고 한다. 또한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도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혹시 침몰할 때를 대비하여 탐험기록을 적은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바다에 던졌다. 배가 침몰하더라도 신대륙 발견의 기록은 남기고 싶어 했던 탐험가의 마음을 담아서 던진 유리병 속의 사연인 것이다.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은 1942년 독일의 나치 치하에서 아우슈비츠를 탈출한 유리병 편지가 가장 슬프지만 극적인 편지였다.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어간 동료 유대인 ‘카체넬존’의 시집을 담아 보관한 유리병이었다. 그 해 유대인들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나치에 항거해서 싸우다 전멸의 위기를 맞았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 줄 시인 한 사람을 피신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시인은 자신들이 겪은 그 끔찍하고 비참한 일을 시로 깨알같이 적어 여섯 부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시인마저도 붙잡혀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갔고, 그곳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죽기 직전, 시인은 자신의 시들을 유리병 속에 담아 수용소 마당에 파묻어 놓았다. 그 중 하나의 유리병이 담긴 시집이 바다를 건너오게 되었다.

그렇게 ‘카체넬존’의 시들은 세상에 알려졌고 인류는 공분하며 다함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시는 유리병 편지와 같아 누군가에게 닿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한없이 떠다니는 고독함이 아닐 수 없다. 그 고독한 오디세이야 말로 ‘시’가 지향하는 바람처럼 돌고 도는 아름다움, 여행, 역사의 흐름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그 언젠가 훗날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유리병 속에 편지를 넣고 바다에 던진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사연 뒤에 대개 던져진 유리병들은 대부분 회수가 되지만 깊은 바닷 속에 가라앉는 것도 매우 많다고 한다. 편지를 쓴 사람의 생애가 끝나도록 물 속에 그렇게 잠겨있는 편지도 많이 있을 것이다.

혹은 우연히 누군가의 손으로 흘러 들어가 깜짝 놀랄 인연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설 속에서나 회자될 것 같은 이 유리병 편지는 인간이 이미 구축해 놓은 통신, 배달 망을 넘은 우연으로 결정되는 장소와 그 시간으로 배달이 되는 점에서 매우 감성적이다. 자신의 사연을 담아 존재의 이유와 삶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바람과 애절함이 묻어있는 듯하다. 이렇게 바다 건너 그 누군가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것과 달리 사랑하는 이들과의 헤어짐에 가슴아파하는 사연도 있다. 놀랍게도 그 사연은 노란색 편지지에 한글로 정성스레 쓰여 있었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군데군데 묻어져 있었다. 올해로 9년이 되는 아버지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며 눈물짓는 사연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예전 모 통신사 광고에서 아버지를 두고 떠난 딸을 그리워하는 동료 교수님이 계셨다. 전 직장이던 포항공대에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계시는 모 교수님의 따님이 태풍 매미 때 사고로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버렸다. 그렇게 예쁘고 착한, 세상에서 둘도 없이 사랑스런 딸이 아버지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버려 폰 번호를 해지하지 않고 딸이 생각나면 자동응답 음성으로 마음을 달래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더 이상 교수님께 아픔을 다시 소환할까봐 언급하기도 죄송하고 미안하지만 당시 SK 텔레콤 ‘사랑을 향합니다’의 캠페인 중 ‘하늘로 보내는 음성 메시지’ 편은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짓게 했다. 이런 사연들은 병속에 편지 대신 시간을 담은 듯하다.

예전 미국의 팝가수 중에 짐 크로스라는 이태리 출신의 가수가 부른 ‘유리병 시간(Time in a bottle)’ 이라는 곡이 있었다. 만약 시간을 병 속에 저장할 수 있다면 내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매일(Everyday)이라는 시간을 저장하는 것이다. 영원이 없어질 때까지 당신과 함께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매일을 보물같이 저장하고 그것을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쓰고 싶다는 내용이다.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그가 남긴 곡은 후에 큰 인기를 얻어 빌보드 정상까지 휩쓸었다. 지금 들어도 아름다운 기타소리의 이 노래는 유리병 속에 든 시간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연대로 유리병 속에 시간과 사연을 담아 하루라는 귀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만일 내게 내 마음 속의 유리병에 담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 이 시간 함께 하고 있는 주위 모든 이들과의 아름다운 인연, 그것이 아닐까? 오늘도 유리병 속에 하나의 사연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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