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명예교수
농민들은 가을이면 수확물을 판매해서 얼마간 돈을 얻었지만, 항상 부족하고 다음 해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었다. 겨울 동안 보리농사를 지었지만 보리 익기 전 보릿고개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당시 쌀을 수입하기도 했고 밀가루 구호물자를 받기도 했지만, 농가살림은 나아지지 않아 정부에서는 쌀 수확량 증산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쌀 절약 캠페인이 1960년대 들어 본격화되었다. 1962년 정부는 원조 밀가루 보급 하에 분식장려운동을 개시했고, 1963년에는 식당, 여관, 호텔 등에서 점심에는 쌀밥식사 제공을 금지하는 양곡소비제한조치가 발표되었고, 1967~1976년에는 혼분식 행정명령을 시달했다. 또한 정부는 필리핀에 위치한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에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우리에 맞는 쌀 품종개발에 힘썼다. 이 연구소는 녹색혁명 수행의 주요 기관으로 1962년 미국 포드와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설립되었다. 통일벼는 농촌진흥청 주도로 이 연구소에 파견된 전문가들의 수년간 노력 끝에 1971년 개발되었고, 이후 정부 행정력에 기초하여 전국 농촌에 보급되었다. 통일벼가 보급되자 1977년 쌀 총 수확량은 1960년대 말에 비하여 30% 이상 증가했다.
일시적이지만 농촌 가구 당 명목소득이 도시를 앞지르기도 했다. 이러한 증산에 힘입어 정부는 1977년 ‘녹색혁명 성취’를 선언했다. 통일벼는 키가 작아서 태풍과 병충해에 강했고, 무엇보다 생산량이 기존 볍씨 대비 30% 이상 높았다. 하지만 일장감응성(日長感應性)이 낮아 충분한 생육기간이 필요했고, 빠른 시기에 모내기를 해야 했다. 정부의 통일벼 보급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농촌으로 확산되었다. 1975년 쌀 총 생산량은 426만 7,000톤으로 쌀 자급률 100%를 최초로 돌파했다. 1977년에는 통일벼 재배면적이 기존 ‘자포니카’ 재배면적을 넘어섰고, 농가 평균 쌀 수확량은 1헥타르(3,025평)당 4.94톤으로 총 생산량 600만 6,000톤을 기록했다. 그리하여 정부는 쌀 막걸리, 쌀엿, 쌀떡 등의 제조를 허용했다. 이 당시 정부는 ‘농공병진정책’을 채택하였고 또한 ‘새마을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또한 정부는 ‘이중곡가제’를 채택하여 농민들로부터 시세보다 비싸게 쌀을 매입하고 도시민들을 위해 이 쌀을 좀 싸게 시장에 풀었다.
1980년대 이후 계속되는 대풍과 쌀 소비 감소로 1989년부터는 쌀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수확 품종이지만 맛이 푸석하여 한국인에게 좀 안 맞는 듯한 통일벼는 매력을 잃었고, 양에서 질로 식량 생산 정책도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통일벼의 육종과정에서 축적된 유전자원과 육종기술은 맛과 건강을 앞세운 기능성 벼 육종을 위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 한국의 쌀은 수량성과 맛을 정복하고 건강기능성이 더해진 다양한 유색미로 진화 중이다. 유색미는 도정 전 현미의 색이 검은색, 빨간색, 녹색 등으로 각기 다른 영양학적 가치를 지닌 색소로 이뤄진 ‘색이 있는 쌀’이다. 유색미에는 ‘파이토케미컬 (Phytochemical)’로 불리는 기능성 성분이 들어 있어 항산화 및 스트레스 저항력 향상, 면역력 증진 등의 효과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농진청의 KAFACI (한-아프리카 농식품 기술협력협의체)와 KOPIA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를 중심으로 농식품부, 농어촌공사, 유엔세계식량계획 등이 협업해 아프리카의 벼 품종 개발과 종자 보급 체계를 구축하는 ‘K-Rice Belt 사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보릿고개를 해결해 준 통일벼에 그곳의 벼를 결합하여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큰 효과를 나타내면서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 녹색혁명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사업은 우리나라의 농업기술을 활용해 아프리카의 식량난을 해결하려는 야심에 찬 시도로 우리나라는 벼 육종 전문가 2명을 세네갈 소재 ‘아프리카 벼 연구소 사헬센터’로 파견해 벼의 육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배양 기술을 통해 4,000여 개의 유망 계통을 만들어냈다. 만들어진 각 유망 계통은 19개 회원국으로 보내져 각국의 현지 품종과 교배하거나 국가별 선발과 적응성 시험을 거쳐 2023년에는 르완다의 ‘KATETA21-1’ 등 6개국에서 15개 품종이 등록됐고 가나, 우간다 등 10개국에서 31개 품종이 등록 심사 중이다.
이들 중 2017년 12월 세네갈에서 등록된 ‘이스리-6’과 ‘이스리-7’ 품종은 수량성이 우수하고 밥맛이 좋아 현재 빠른 속도로 아프리카의 농업전문기관 및 농가에 보급되고 있다. 세네갈 농업연구청에서는 ‘이스리가 기존 재배하던 사헬보다 수확량이 2배 많고 도정률이 높아 생산성과 소득향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세계적인 거대한 육종회사에 로얄티를 내며 좋은 품종의 농작물 씨앗을 얻을 수 있었으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벼 만이 아니라 수경재배를 통한 씨감자, 조생종 옥수수, 그 이외 다양한 환금작물들을 농촌진흥청, 코이카 등을 통해서 이들에게 소개하고 재배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이익을 바라지 않는 공적인 국제원조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전략으로서 행해지고 있다.
대경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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