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승 여행가

▲ 복원 작업 중인 디오니소스 극장. 그 너머로 보이는 긴 건물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다.
 신들의 공간이자 아테네 시민들의 요새 아크로폴리스 근위병의 죽음은 그리스인들의 심장을 불타오르게 했다. 자유를 사랑했고, 조국 그리스를 사랑했던 청년은 죽어 그리스인들의 영웅으로 불려졌다.

청년의 죽음으로도 아크로폴리스에 하켄크로이츠의 게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테네 전역을 내려다보며 펄럭이는 나치 깃발을 바라보는 아테네 시민들의 가슴은 무너졌다. 그러나 근위병 코우키디스는 죽어도 죽지 않았다.

한 달 후 어느 날 새벽. 크레타 섬이 함락되었다는 비보를 접한 스무 살의 그리스 청년 둘이 아크로폴리스 벼랑을 담쟁이 풀처럼 기어올랐다. 그들은 나치 병사들의 눈을 피해 하켄크로이츠를 끌어내렸다. 그들은 나치 깃발을 불태워버린 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점령군들은 궐석재판으로 청년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의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조직적인 저항운동의 서막이 열렸다. 이 무렵이 바로 그리스의 대표적인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시대적 배경이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에서 함께 살기 위해 8시 기차를 타기로 한 두 남녀. 여자는 기차역에서 남자를 기다리지만 8시가 되어도 남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차가 출발하자 여자는 절통한 마음을 안고 홀로 기차에 오른다. 기울어 가는 조국의 운명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남자는 멀리서 여자의 뒷모습만 바라본다….

다음은 소프라노 조수미 버전 이 노래 가사의 대략이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 함께 한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못하리….”
8시에 떠난 그 기차는 영원히 카테리니에 가 닿지 못했을 것이다. 여자는 기차에서 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남자는 역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한 청년은 기자로, 작가로, 사회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리스 금융위기 때는 가혹한 긴축경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한 그는 2020년 사망했다. 다른 한 청년도 정치인이 되어 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의 활동은 그리스 정치와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의 근현대사는 대한민국과 참 많이 닮았다. 외세의 침략과 끊임없는 저항, 이념 갈등에 의한 내전, 군부독재정권의 집권, 그리고 최근의 외환위기까지. 또 놀라울 정도의 회복탄력성까지.

아크로폴리스 남쪽 절벽 아래 경사면에 기원전 6세기에 조성된 디오니소스 극장이 보인다. 아크로폴리스 입구를 들어서기 전 오른쪽 아래로 내려다보던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보다 500년 이상 나이를 더 먹어서인지 가까스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반원형의 무대와 경사진 반원형의 관람석이 극장의 전모다. 매끄러운 대리석의 행색으로 보아 최근 복원의 결과인 듯하다.

그래도 극예술의 발상지가 흔적이라도 남아 있었다는 것이 그저 고맙다. 아테나가 수호신의 역할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잘 수행하고 있는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수호하려거든 진작 신전에 대한 포격이라도 막아주지. 절벽을 뛰어내린 앳된 청년의 슬픈 육신이라도 붙들어 주지. 그 많은 신들은 왜 그리스인들의 고난 앞에서 침묵하기만 했을까. 자기네들끼리 지지고 볶느라 인간세상을 거들떠 볼 겨를이 없었던 것일까.

제우스의 아들 디오니소스는 연극과 술의 신이다. 또한 광란, 황홀경, 도취, 쾌락의 신이기도 하다. 로마 신화에서는 바쿠스로 불린다. 리지아의 왕 미다스에게 ‘황금의 손’ 마법을 걸어 주었다가 왕의 딸과 신하까지 황금으로 변해버리는 바람에 다시 마법을 풀어주기도 한 장본인이다.

그리스 신화 속 디오니소스는 ‘경계를 초월하는 신’, 이성과 광기,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인물로 표현된다. 예술을 사랑하면서도 질서와 조화를 상징하는 형 아폴론이 로고스적인 인물이라면 술을 좋아하고 도취와 혼돈을 상징하는 동생 디오니소스는 파토스적 캐릭터다. 한 때 치기어린 예술가들을 말할 때 디오니소스가 클리셰로 동원되기도 했던 이유다.

디오니소스 극장에는 서양 연극의 창시자로 알려진 극작가들의 작품들이 올라갔다. 아테네 시민들은 여기서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등의 공연을 보며 웃고 울었다.
2,500년 전 그리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계기로 이렇게 풍요로운 정신문화를 누리게 되었을까. 도대체 언제부터 그들은 이렇게 고급한 삶을 향유하기 시작했을까.

아직까지도 정치, 문학, 철학, 물리학, 연극, 음악, 미술, 건축 어느 하나 2,500년 전 그들로부터 영감과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가 없다. 당시의 그리스인들은 모두 신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리스의 많은 신들은 인간과의 사이에서 자식들을 낳았다. 당장 디오니소스만 해도 제우스와 인간여인 세메라 사이에서 났다. 제우스는 그 외에도 걸핏하면 인간여인과 사랑에 빠져 많은 혼외 자식들을 두었다. 디오니소스도 여러 인간여인들과 사랑에 빠졌고 많은 자식을 두었다. 그 외에도 아폴론, 헤라클레스, 포세이돈,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신화적 상상력에 기반 해서 보면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자손이다.

화이트헤드의 “현대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는 말을 조금 확대하면 “현대문명은 그리스의 각주”인 셈이다.
디오니소스 극장 너머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보인다. 이곳 아크로폴리스와 그 주변에서 나온 유물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멀리서 봐도 상당한 규모다.

디오니소스 극장 오른쪽 바로 옆에는 아스클레피온 유적이 있다. 당시의 종합병원이자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이기도 한 이곳은 발굴 중이다. 아스클레오피스는 소크라테스의 유언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여보게 크리톤, 내가 예전에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 자네가 대신 좀 갚아 주게.”

유언만 놓고 보면 소크라테스가 닭백숙이 먹고 싶어 친구에게 닭을 빌렸던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아스클레피오스는 엄연한 신이다. 그는 아폴론과 인간여인 사이에서 났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병이 나으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보은의 의미로 닭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때 무슨 병이 들었다가 나았던 것일까. 크산티페와의 불화로 술병을 얻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무지를 모르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려다 속병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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